칼럼-매화초옥도의 지음지교(知音之交)
칼럼-매화초옥도의 지음지교(知音之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21 15:5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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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

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매화초옥도의 지음지교(知音之交)


대학 캠퍼스에도 신학기를 맞이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만큼이나 찬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른 가지에 물이 차오르더니 여기저기 꽃망울 터트리는 소리가 들린다. 톡. 톡. 톡. 톡. 춘삼월 유혹에도 두 눈 딱 감고 책상머리 지키고 앉아 있으니 이젠 보란 듯이 코끝을 유혹한다. 마지못해 고개 돌려 창밖을 내려다보니 매화 한 가지 살며시 기품을 뽐내며 조롱하듯 쳐다본다. 예로부터 매화를 사랑한 이들이 많았다.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 967~1028)는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 삼았다 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

 

리었다. 서호(西湖)의 고산(孤山) 초옥(草屋)에서 매화를 심어 평생을 은거하여 시(詩)서(書)화(畫)를 즐기며 신선같이 살았다. 옛 문인들은 매화를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조선 말기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산속 서재에서 은거(隱居)하는 선비를 그린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가 유행하였는데, 전기와 조희룡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를 ‘선생님’ 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는 한동안 매화 그림만을 그리고 밤에는 본인이 직접 그린 매화 병풍을 치고 잤으며, 그림을 그릴 때에도 먹과 벼루를 매화 이름이 들어간 것과 매화 시가 새겨져 있는 벼루만을 쓰는 광적인 취향을 보이기도 했다.

전기(田琦 1825~1854)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ㆍ사진)에서는 매화 가득한 숲에 초옥을 짓고 사는 벗을 찾아 나선 사내의 모습이 등장한다. 눈 쌓인 산야(山野)에 묵선(墨線)으로 힘 있게 표현된 매화가지와 그것과 대조되는 흰점으로 백매(白梅)를 표현하였다. 무채색의 배경에 등장인물의 옷을 빨강과 초록으로 강조하여 대비되는 산뜻함을 보여준다. 거문고를 메고 다리를 건너오는 이가 입고 있는 붉은 옷과 초옥의 지붕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따뜻한 느낌마저 준다. 밝고 온화한 색채의 사용으로 미루어, 전기는 매우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풍류와 흥취를 나누기엔 석양 무렵이 더 적당하지 않았나 싶다. 몸에 맞춘 듯 소박한 집안에 앉아 피리를 들고 있는 사내와 그 친구를 찾아가는 거문고를 메고 있는 친구는 아마 오늘밤 매화 풍광 속에서 한바탕 지음(知音)을 나눌 요량이다. 눈빛과 백매의 밝음이 산속의 어둠을 비춰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매화 만발한 산속에서 아직 남아있는 눈빛의 추위도 그들의 교제로 녹여 버릴 것만 같다.

전기의 그림 <매화초옥도>는 임포의 고사(故事)를 소재로 하여 서화가였던 친구인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과의 교제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작품 오른쪽 아래에 ‘역매인형초옥적중(亦梅仁兄草屋笛中)’이라 적혀 있으니 초록색 의관으로 집에 들어앉아 있는 오경석이 피리를 불고 있고, 붉은 옷을 차려입고 들어가는 이가 바로 전기 자신이다. 전기는 친구와 자신을 그림에 등장시켜 아름다운 우정을 자랑하였다.

매화초옥도는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시가 연상된다. 거문고와 피리의 향연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매화타령이 들려오는 환영에 빠진다. 어쩌면 매화꽃이 지는 아쉬움에 슬픈 곡조가 산속을 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화가 피고 지기가 무섭게 수많은 나무에 꽃들이 쏟아진다. 친구와 함께 나누기에는 봄만한 것이 없고 꽃만한 것이 없으며, 술만한 것이 없고 악기만한 것이 없다. 이것들을 일러 풍류(風流)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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