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말장난
아침을 열며-말장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26 15: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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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말장난

말은 그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말을 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실로 말에 대한 격언이나 속담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한 번 뱉어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한 번 말할 때 두 생각하라.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대충 곱아보아도 이렇다. 속담을 들으면 더욱 말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유명한 사람들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단 한 번의 말 실수로 치명적인 상처와 손해를 보는 걸 종종 본다. 오래 전에 젊고 예쁘고 노래도 잘 하던 가수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 평소 하던 대로 순간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가 가수 인생이 끝났다는 얘기는 너무도 유명했다. 또 어떤 남자 MC 한 사람이 실수하는 건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키도 커고 잘 생기고 말도 잘해서 당시에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에 나온 옛날 가수가 재밌어 깔깔대며 웃으며 게다가 그 MC에게 뭐라고 가벼운 요구를 했고 MC는 순간 팩 쏘는 말투로 대꾸했다.

티비를 잘 안 보는데 어쩌다 지나치며 잠시 그 장면을 보곤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오랜 공백이 있은 후에 모처럼 티브이에 출연한 모양이던데 그렇게 면박을 주면 안 될 텐데 하면서 말이다. 보는 내가 다 민망했던 것이다. 그리곤 당장엔 여론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없지만 그 후론 그 옛날 가수와 함께 그 엠씨도 티브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옛날 가수 입장에서는 재기를 노리며 먼저 신곡을 발표하고 슬그머니 오락프로에 얼굴을 내밀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참이었는데 약간의 '오바' 때문에 변을 당했다.

가족 간에 있어서도 말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고 싸우고 갈등하게 되는 경우가 누구나 있다. 내겐 동생이 네 명이나 되는데 세 명은 대학을 나왔는데 한 명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몇 년 전에 집안 일로 그 한 명의 동생과 크게 다퉜다. 녀석의 무례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만 ‘무식한 놈’이라고 욕해버렸다. 학력을 말한 건 절대 아니지만 동생은 엄청난 상처를 받은 걸 두고두고 알게 되었다. 그날 동생은 말을 가려가며 하라는 말과 함께 문을 꽝 닫은 후 지금까지 대면하지 않고 지낸다. 심지어는 자기 결혼 때도 내게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아주 유명한 야당쪽 여자 정치인 한 명이 말장난을 했다. 그녀는 며칠 전에 국회의 중요한 자리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고 말했다. 그 따위로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인데도 그녀는 뜬금없이 국민까지 끌어들였다. 여론의 비난이 일자 다음날엔 “반민특위 활동을 했지만 결국 국론분열을 가져왔다”고도 했다. 여론은 더욱 그녀를 비난했고 급기야 연세가 101살이나 되신 독립유공자 임우철 애국지사가 그녀에게 국회의원 사퇴와 사과를 요구했다. 마땅한 요구에 그녀는 대답을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사과를 한답시고 한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녀는 말하기를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진짜, 무슨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이 있는지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그야말로 아전인수로 나오는 데로 내뱉는 수준이다. 유명한 정치인이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한다. 책임은커녕 저급하고 천박한 말장난을 서슴없이 하는 여자가 제일 야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어렵다. 시정잡배도 그러지는 않는다. 내 낯이 뜨거워진다. 언제나 정치인이 가장 큰 문제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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