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사천에 미포상 항일투사 102명
진주성-사천에 미포상 항일투사 102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27 16:25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사천에 미포상 항일투사 102명

<사천항일독립운동사>를 조사, 연구, 집필하면서 충격적 사실을 접하게 되는데 사천 출신중에 포상자는 39명뿐이고 옥고를 치르고 항일투쟁한 기록이 있으나 미포상자가 102명이나 된다는 시실에 경악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진 이들도 수없이 많으나 문헌근거가 확실함에도 아직까지 미포상자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경남 각 시·군에 보면 30명 내외 미포상자가 있으나 102명이나 되는 시군은 사천시가 유일하다.

강대창 선생은 사형 언도를 받았으나 미포상이고 강대진 2년간 옥고를 치르고 강대호 선생도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미포상이다.

삼천포 3·1운동 지도자 고광세, 손우상, 강또수, 강천수, 김우열, 김종철, 박두수, 박상진, 박상윤, 이계철, 장지린, 전영조, 추태련 등도 미포상이다.

독립선언서를 수집 배포하는 등 활동한 박종실, 장태영 선생도 미포상이다.

서포, 곤양, 곤명 3·1유공자 최범술 선생과 함께 활동한 문형근, 송찬홍, 송수완, 신영범, 임응주, 송용수, 이주효, 조개석, 조관석 형제 등도 미포상이다.

사천읍 출신 항일투사 박기현, 윤수상, 이윤조, 임순백, 황숙주 선생도 미포상이다.

황원방 선생은 만주지역에 군관학교를 건립하기 위해 북만주로 갔다가 마적단에 억만금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었으나 미포상이며 정재흥 선생도 2년간 옥고를 치렀으나 미포상이다.

학생 시위로 옥고를 치른 김경집, 김종철, 장용기, 장준, 이화준, 박학봉 선생 등도 미포상이다.

노동항일운동가 김환일, 김환기, 김직성, 박이기, 손영섭, 박인욱, 박대영 선생 등도 미포상이다.

경남 최초의 신간회 지회를 조직한 김의진, 박남준, 하용수 선생과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선 이광종 선생과 그 가족들도 미포상이며 다솔사 스님들이 국채 보상운동에 앞장 선 기록을 처음으로 찾았으나 미포상이다.

박낙종 선생은 사상 활동으로 5년 징역형을 언도받고 1950년 6월 목포형무소에서 총살되었으나 미포상이다.

임진·정유재란 이후 15년 안에 공신 1만 5000명을 결정했으나 광복이후 100년간 독립지사 1만 5000여 명만 포상해 앞으로 100년 후에도 독립지사 포상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