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창(窓)가의 화분에 배려의 문화를 심어보자
시론-창(窓)가의 화분에 배려의 문화를 심어보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31 15: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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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
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창(窓)가의 화분에 배려의 문화를 심어보자

4월 초하루. 터질 듯, 화창한 봄이 열리는 날이다. 바야흐로 화사한 꽃의 향연이 온 천지를 들뜨게 한다. 매화와 산수유, 목련은 이미 꽃잎을 떨구거나 닫을 때지만 진달래, 개나리, 벚꽃, 철쭉은 제 나름의 빛깔로 한창 산과 들, 도시와 시골을 뒤덮는다. 어찌 이 뿐이랴! 채송화, 수선화, 팬지와 데위지, 튤립, 민들레, 자운영, 유채꽃, 제비꽃…수도, 끝도 없는 봄꽃들은 그 이름을 들먹이는 데만도 하루해가 부족하다.

4월이 시작되는 날 봄꽃얘기를 꺼내는 것은 멀리 지나간 젊은 시절, 한 때 필자가 살았던 영국 브라이튼(Brighton)과 일본 나고야의 꽃과 관련된 추억이 되살아나서다. 영국 남부의 해안도시 브라이튼은 도시 자체가 그리 번잡하지 않은 데다 필자가 머물렀던 곳은 도심과 좀 떨어진 비교적 한가한 마을이었다. 처음 살아본 유럽생활이라 이런저런 추억들이 적잖이 남아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또렷이,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억은 그곳 마을의 창가에 나와 있던 화분들의 모습이다. 산책 삼아 마을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다. 거의 모든 집들의 베란다나 창틀에 크고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20년이 넘게 살았던 일본 나고야에서도 아주 유사한, 꽃과 관련된 문화의 충격(?) 같은 기억이 지금껏 남아있다. 가까운 이웃나라라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일본인들의 정원가꾸기와 나무사랑은 유별나다. 조용한 시골이든, 번잡한 도심이든 작은 틈만 있으면 일본인들은 나무나 꽃을 버릇처럼 심고 가꾼다. 우리처럼 높다란 담장이 많지 않아서인지 일본의 거리나 마을길을 지나다 보면 집 앞이나 낮게 둘러진 담 옆에 작은 꽃나무가 심겨져 있거나 가지런히 화분들이 놓여 있는 모습을 어디서든 쉽게 만나게 된다.

잠시 말머리를 프랑스로 옮겨가보자. 프랑스 전역을 꽃의 경연장으로 바꾸다시피 한 100여년 전통의 ‘꽃의 마을(Ville Fleuris)’ 운동에 관한 얘기다.

20세기 초, 지저분한 기찻길 주변에 꽃길을 조성해 보자며 시작된 이 ‘예쁜 마을가꾸기’ 경연제도는 이제 프랑스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해마다 한 차례씩 ‘꽃의 마을과 도시(Villes et Villages Fleuris)’ 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부여되는 상징적 꽃마크를 한 개라도 더 획득하기 위해 지금은 프랑스 내 1만 2000여개의 마을(코뮨, communes)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한다니 그 뜨거운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어 누가 누가 더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어 볼까?’ 우리도 한번 도입해봄직한 제도가 아닐는지.

올해 경상남도는 도시주변의 빈 공터와 유휴지 등 버려져 있는 짜투리 땅 110여 군데를 녹지공간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 280여억 원의 ‘녹지공간조성사업비’를 예산에 반영해 도내 17개 시군에 배정했다고 한다. 금년도 경남도 총예산 8조 2000여억 원의 0.3%에 불과하지만 ‘팍팍한 우리 주변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는 작지만 소중한 종자돈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들의 환경개선 노력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큰 도시를 잇는 대로변에는 멋진 가로수가 심겨지고 국도, 지방도 할 것 없이 가로 주변 공간에는 수많은 봄꽃들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아직까지는 대로변이나 도심공원, 개천가 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집중되거나 한정돼 있다. 소박한 우리의 삶과 정말 가까이 있는 마을 주변이나 이면도로, 골목길 등은 여전히 소외된 상태다.

관청의 노력이나 다른 이의 손길을 기다리기 전에 이 찬란한 4월을 맞아 우리 집 창틀, 내 집 베란다에 작은 화분 몇 개를 내놓아 보자. 나 자신, 내 가족만의 것이 아닌 작은 화분들이 우리 집 창틀에 얹혀 지고 우리 집 담 밖 나무에 예쁜 꽃이 피면 바로 그곳에 소중한, 남을 위한 ‘배려의 열매’가 맺히지 않겠는가! 말로만의 선진(先進)이 아닌, 문화를 향한 오솔길이 열리고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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