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연극을 보다
아침을 열며-연극을 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2 15: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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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연극을 보다

정말 모처럼 연극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연극을 본 기억이 남편과 함께 큰 아이를 업고 대학로에 있던 어느 극장(도무지 극장 이름이 기억 안 남)에서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것도 온전히 연극을 본 게 아니고 보다가 연극이 시작될 무렵에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거의 쫓기다시피 극장을 나왔다. 안내자가 각종 주의 상황을 알려주며 아기가 울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듣고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것을 걱정해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가 나고 극장이나 연극은 딴 나라 이야기로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게다가 귀하고 의미 깊은 연극을 보았다.

서울 새실극장에서 공연 중인 ‘아버지의 다락방’이라는 연극을 관람했다. 아버지의 다락방은 원래 소설가 김춘복 선생님의 중편소설 ‘조지나강사네’를 각색해서 만든 연극이다. 김춘복 선생님은 나에겐 아주 특별한 분이다. 진주가을문예 공모에서 내 소설 ‘누이 소묘’ 뽑아준 분이다. 소위 등단을 시켜준 깊은 인연인 선생님을 뵌 것도 마지막으로 연극을 본 것과 거의 맞먹을 것이다. 그토록 무심했는데 어찌어찌 연이 닿아 용케 선생님 원작의 연극을 보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었고 행운이었다. 선생님까지 만나 뵈었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행복한 봄날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공연이었다니 조상이 도왔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연출자가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며 14회 공연에 전부 만석이었다는 전언도 했다. 약 3백석이나 될 작지 않은 극장이 매회 만석이었다니. 연극을 보고 나서는 당연하고 마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극은 갱년기에 접어든 노인들의 소외감이랄지 외로움이랄지 암튼 어떤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부부의 갈등과 내밀한 성 이야기를 여러모로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여러모로 함은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적재적소에 팍팍 터져주는 유머와 위트와 그 외에 모두 마땅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할 이야기를 다 하고 끝까지 마무리하던 것이다. 시종 한 군데도 얼버무리지 않고 말이다. 노인에 접어든 부부의 성생활이라는 하기에 버거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잘도 하던 것이다. 주인공 부부는 오랜 동안 각각 다른 방을 사용하면서 점점 부부 사이가 소원해져 갔다. 급기야 남편쪽 친구들의 훈수를 받아가며 화해를 시도한다. 그러나 될 듯 하다가도 화해는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친구의 자살 시도, 자식들의 협조가 있고 난 후에야 어렵게 그것은 마치 물이 넘치듯 와락 달려들었다. 귀한 선물처럼.

출연 배우들의 연기 역시 농익은 대봉 홍시처럼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웠다. 갱년기가 한창일 나이인 김형자 배우의 연기는 말해 무엇을 하겠는가. 마치 이웃집 아줌마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관객의 몰입을 도왔다. 남자 주인공인 배우 안병경의 연기 역시 압권이었다. 소설가 역할을 맡았는데 마치 소설가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 같았다. 아들, 딸역을 맡은 정철과 반민정의 연기는 콜라처럼 똑 쏘면서도 달콤했다. 심플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무대 디자인도 관객이 연극과 하나가 되게 했다. 말로만 듣던 연극이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갱년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너무 바빠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있다가도 그놈의 갱년기가 불쑥 찾아올까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은 열이 확 오른다느니 갑자기 남편이 꼴보기 싫다느니 심지어는 꽉 죽고 싶다는 친구들이 갱년기 장애라고 이구동성 얘기하는 걸 듣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각방을 사용하고 밤일(?) 역시 거의 안 한다고 입을 삐죽댄다. 연극에서처럼 극적인 화해가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랜 친구처럼 오래 함께 산 이웃처럼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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