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국의 ‘웃음속 칼 감추기’와 북한의 선택지
시론-미국의 ‘웃음속 칼 감추기’와 북한의 선택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3 16: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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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
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미국의 ‘웃음속 칼 감추기’와 북한의 선택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북한에 제시한 문서를 로이터통신이 입수 보도하였는데, Δ핵프로그램의 포괄적 신고 및 미국과 국제사찰의 전면적 허용, Δ모든 핵관련활동과 새로운 시설 건설 중단, Δ모든 핵인프라 제거, Δ핵과학·기술자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 등 4가지 핵심 사항을 포함하여, 북한의 모든 핵생화학(ABC) 프로그램과 시설·능력, 탄도미사일과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를 명시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보여온 유화적 대응과 달리 북한을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하는 빅딜 제안이었다.

지난주 시론에서 북한이 하노이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거와 괌·하와이의 미군 전략무기 철수”를 요구한 것은 북한 스스로 미중 군사대결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왜 북한이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간 ‘부신입화’(負薪入火)의 무리수를 둔 것인지 로이터통신의 이 보도로 확연해졌다. 미국의 전면 항복 요구에 맞짱뜨기 벼랑끝전술로 나온 것이다.

삼십육계로 비유하면, 미국의 유화적 태도는 북한을 안심시켜 무장 해제시키려는 계책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사람도 물기에 싱가포르에서는 대어를 낚기 위해 짐짓 풀어주는 ‘욕금고종’(欲擒故縱) 계책을 구사했다. 이에 핵보유를 인정받을 것으로 착각한 북한은 영변 폐기를 약속하면서 떠들썩하게 기차로 베트남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미국은 곧바로 강수로 돌변하여, 다시 재차 겹겹이 포위하는 ‘조호이산’(調虎離山) 계책을 사용하였다. 호랑이(북한)로 하여금 산을 스스로 떠나게(핵포기) 하기 위해서는 그 산의 자연적 형세가 불리해질 때까지 계속 포위 압박하거나 인위적 형세를 만들어 불리하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유화책도 강경책도 트럼프 대통령은 웃음속에 칼을 숨긴 ‘소리장도’(笑裏藏刀) 계책을 구사하고 있다. 숫제 산을 떠나라 말하면서도 웃음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7일자 시론에 적었듯이, 북한은 이미 하노이에서 “①핵무기 생산 중단 등 미래핵 폐기, ②핵무기 생산시설·장비·기술 등 현재핵 폐기”를 약속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웃음에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곧장 “③기보유 핵무기 등 과거핵 폐기”를 요구했다. 슬그머니 풀어주더니만 돌연 최대 압박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에 북한은 적을 칠 때에는 두목부터 잡는다는 ‘금적금왕’(擒賊擒王) 계책으로 나름대로 괌·하와이를 거론했지만 악수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다시 유화책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패는 모두 드러났다. 결국에는 상대의 양보를 압박하는 힘겨루기만 남는다. 핵 폐기 협상이기에 북한의 압박수단은 핵능력과 의지를 보이는 것뿐이다. 인공위성을 빙자한 미사일 발사 등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 현실성을 입증해 보이거나 대남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이 물러설 곳은 없다. 빅딜 문서까지 공개된 상황이다. 어쩌면 미국이 의도적으로 로이터통신에 뉴스를 흘렸을 수도 있다. 북한만 벼랑끝이 아니라 미국도 배수진을 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이판사판 대응은 미국의 강경대응을 부를 뿐이다. ‘관문착적’(關門捉賊) 계책으로 문을 닫아걸고 북한을 잡으려 할 것이다. 해상봉쇄 등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발동하고 군사행동도 불사한다.

미인계(美人計)의 웃음도 무섭지만 힘센 강자의 웃음은 더욱 치명적이다. 더구나 배수진까지 치며 웃고 있다. 북한의 선택지는 북핵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폐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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