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베트남의 통일 이후와 현실
도민칼럼-베트남의 통일 이후와 현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3 16:13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
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베트남의 통일 이후와 현실

베트남을 공격했던 나라들 미국도 못 이긴 베트남? 필자가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방문을 하였다. 무역을 하면서 베트남 호치민을 여러 번 방문을 하면서도 백마부대가 있었던 한국군이 주둔한 지역인 닌호아 백마사령부 백마29연대 깜란은 처음이었다. 백마 사령부 식당에서 근무했던 82세의 옹 띠를 만날 수가 있었다. 한국군의 주둔지를 살펴보고 통일이 되고 난 뒤의 공산화가 되면서 받았던 차별의 사상을 논하고 한국군들의 활동상황을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밤을 보냈다. 나는 한국군이 한 번도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선에 심은 한국군의 전투 신화는 베트남전 당시와 그때의 대통령궁은 지금도 누구나 베트남 호찌민 여행을 하면 방문 할 수가 있는 곳이다. 모든 비밀이든 지하 방카 통신망을 구경 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청와대와 같은 역할을 한 곳이다. 집무실을 그대로 볼 수가 있고 어떤 비밀이 있어서 통신망이 간첩에 의해 노출되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한국군이 배치된 지역은 1번 도로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이 해안지역은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핵심적인 지역이었다. 빈케, 푸캇, 송까우, 뚜이호아, 나짱 닌호아, 깜란, 붕타우병원, 다낭 십자성, 호이안, 추라이. 푸캇 한국군의 주둔지다. 베트남 1번국도 당시 백마 30연대 1대대 부대 뒤로 강물이 흐르고 산새가 정글이다. 여기에 필자가 파병되어 근무한 곳이다. 베트남 전쟁 때 백마 30연대 사령부 있을 당시 병장이었던 필자는 그동안 구형 무기로 전쟁을 하다가 1967년 M16소총 지급을 받았다. 베트남전 당시 특공대 한국군 미군이 4번의 전투작전을 실시했는데, 헬리콥터를 타고 전쟁터에서 함께 싸웠다. 그러나 한국군은 최고의 전투력을 보인 군인들이었다. 전쟁당시 이 식당 아줌마의 도움으로 베트콩의 정보를 많이 수집을했다. 민 사처에 월남어가 훈련된 사병이 있었다. 6개월 과정으로 월남어를 배우고 통역을 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주 월 한국군은 베트남에 일반 시민들을 위해 학교를 건설해주거나, 댐을 만들어주는 등의 대민 사업을 통해 베트남 주민들과 교류를 했다고 생각된다.

이는 외신들 역시 한국군을 극찬했던 이유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대민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하다는 보답으로 베트콩의 정보를 전달해 주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봉사단이 논과 밭에 모심기를 하였고,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철수 하면서 공산화가 되고 난 뒤에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면서 한국군 증오비에 새겨진 잔혹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공산화가 되지만 안 했어도 정 반대의 현상이다.

베트남 곳곳에 세워져 있는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탑을 지금 보면 뭐라고 써 있냐면 ‘쯩 Elr’이라고 씌여 있는데 이 ’쯩 띡’ 이라고 하는 건 ‘증적’이란다. ‘증적’ 그리고 옆에 씌어있는 말이 ‘깜 투’ 라고 하는 것은 ’증오하다‘ ‘복수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주민들은 한국군의 증오비를 세우기 시작하여 여기에 새겨진 글들이 남아있다. 이것을 이 마을에서는 증오 탑이라고 부르는데 한국군이 학살을 한 마을이다. 베트남 국가가 이 학살을 조사하고 난 뒤에 보고서가 나오게 되었다. 이 학살이 입증되고 정부에서 한국군 학살 지를 역사 유적지로 공인을 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가 다니는 곳들이 베트남 정부가 지정한 역사 유적지들이 되어있는 곳이다. 증오 탑 옆에는 숲이 우거진 산 앞으로 농사를 짓는 들판이 있고, 격렬했던 학살이 바로 고자이 마을에서 1966년 2월 26일 아침에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 시간 안에 남조선 한국군 병사들이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는데 여기에 위령탑 내용이 월남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여기 어머니들은 아이를 재울 때 아이를 눕혀놓고 이상한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재운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들려오는 자장가 때문에 제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자장가 내용이 아가야 이 마을을 기억 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 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넌 커서도 이 말을 꼭 기억 하거라. 이런 자장가가 불린다고 한다. 증오비에는 한국군의 범죄와 구체적인 잔혹 행위들이 묘사되고 있다. 공산화가 되고 난 뒤의 선물이다. 전쟁을 하면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북한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