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2)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4 16: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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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2)

북경에서 서울을(중국에서 한국을) 바라본다. ‘이쪽’과 ‘저쪽’이 뒤바뀐 두 번째 시선이다. 그런데 아무리 시선이 바뀌어도 보이는 건 똑같다. 똑같은 창(윈도-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요즘 우리는 모든 정보를 접하기 때문이다. 단, 느낌은 좀 다르다. 지난번에 말한 객관성과 애국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에 비치는 저쪽(늘 ‘이쪽’이었던 한국)은 우려스럽다. 경제침체문제나 청년실업문제 저출산문제 미세먼지문제 등은 굳이 철학자가 나설 일도 아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철학자라면 ‘가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우리사회는 ‘나’와 ‘우리편’의 ‘이익’이라는 가치 이외에는 대부분의 가치들이 관심 밖으로 혹은 무관심 속으로 내몰려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제대로 된 이름값’이라는 가치도 마찬가지다. 그건 공자와 플라톤의 핵심철학이었다. 그들이 꿈꾼 ‘정치’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얼마 전 ‘공자의 가치들’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기본’을 위한 50개의 가치들을 정리한 적이 있다.

개改(고침) 경敬(공경/경건/받듦) 공恭(공손함) 관寬(너그러움/관대함/관용) 낙樂 및 요樂(즐거움/즐김) 노勞(애씀/노력) 덕德(덕/덕스러움/훌륭함) 도道(도/도리) 명明(명철함/눈밝음) 문問(물음) 민敏(재빠름/민첩함) 붕朋 및 우友(친구/벗함) 사思(생각) 사事(섬김/모심/받듦) 서恕(헤아림) 선善(선함/좋음/잘함) 수脩(닦음/다스림/수양) 시視 및 관觀 및 찰察(봄/살핌/살펴봄) 신信(믿음/미더움/신뢰) 신愼(삼감/신중함) 안安(편안함) 애愛(사랑) 언言(말) 예禮(예/예의/예절) 온溫(따뜻함) 외畏(두려워함) 욕欲(하고자함/의욕) 용勇(용감함/용기있음) 의義(의로움/정의) 인仁(어짊) 절節(아낌/절약) 정正(바름/바로잡음) 정貞(올곧음) 종從(따름) 주周(아우름) 중重(무거움/진중함) 및 위威(위엄/권위) 지知(알아줌) 지知(앎/지혜) 직直(곧음) 총聰(총명함/귀밝음) 및 청聽(들음) 충忠(충성스러움/충심/충실) 치恥(부끄러움/부끄러워함) 태泰(당당함/의젓함/점잖음) 학學(배움) 혜惠(은혜로움/베풀어줌) 호好(좋아함) 화和(어우러짐/조화/화합) 회懷(품어줌) 회懷(품음/마음둠) 효孝(효성/효도) 등이다.

나는 이것들을 통해 ‘인간의 질’을, ‘수준’을, ‘고급스러움’을, 그리하여 세상의 질을 담보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이 지금 관심 밖인 것이다. 인기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곧잘 이 반대현상들을 아프게 보여준다. 그래 가지고서야 ‘질’ ‘수준’ ‘고급’은 요원하다. 물론 ‘이쪽’(중국)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공자가 이런 가치들을 이야기한 것도 그 반대현상인 가치의 붕괴가 바로 이곳(중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그런 현실 속에서 공자라는, 공자의 철학이라는 엄청난 꽃을 피워냈다. 여기가 중국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이들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그 덩치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우리는 원점에서 다시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전공한 하이데거만 하더라도 자신은 [자기 주변에 그렇게 많았던 일본인들보다도] 중국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노자 관련 논문을 쓰면서 새삼 이들의 수준에 감탄하고 있다. (이들의 우주관련 기술은 다른 모든 수준들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나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해 강조할 생각이지만, 우리가 중국을 포함한 세계를 상대하려면 ‘질적인 고급’ 이외에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 오직 ‘고급’으로만 우리의 가치를, 즉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기술과 상품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질이 고급이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 차례 기회 있을 때마다 했던 말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질’에 대한, ‘수준’에 대한, ‘고급’에 대한 지향이 없다. 이대로 가면 낭떠러지다. 우리는 좀 더 책을 읽어야 하고, 좀 더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또 그것을 제도적으로 뒷밭침해야 한다. 우리가 적어도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 더 고급스런 국가를 이룩한다면 중국도 우리를 지금처럼 가볍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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