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
아침을 열며-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07 15: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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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

<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은 평론가 구중서가 쓴 책의 제목이다. 추기경이나 구중서 평론가나 두 사람 모두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따로이 얘기가 필요없이 책을 읽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래도 자꾸 자랑하고 싶어진다. 국내의 큰 문학모임에서나 잠시 뵙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책의 저자 구중서 선생님께서 직접 사인을 하신 책을 선물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추기경에 대해선 생각할 때마다 생각만으로 행복해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경의 그 순한 미소를 사진으로라도 뵈면 내 마음까지 순해지고 올바른 걸 갈구하게 된다.

나는 83학번이다. 그쯤의 학번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나 추기경에 대한 마음은 특별하다. 간단히 말해 구세주다. 그가 계셨기에 그 당시 우리는 마음놓고(?) 독재타도를 외칠 수 있었다. 운동을 하다 지치거나 독재정권에 쫓기더라도 언제든지 구해줄 명동성당이라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는 추기경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다지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나 전혀 운동권에 관심도 없는 학생들이라도 추기경을 생각하며 슬그머니 시위대에 합류하곤 했다. 당시론 독재타도 시위는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올바른 일이라는 걸 추기경은 온 몸으로 보여주셨다.

‘1987년 6월 10일 국민대회 대열이 서울 시내를 뒤덮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밤이 왔으나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대열은 흩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경찰 병력에 밀리는 젊은이들의 뒷걸음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명동성당 언덕을 향하고 있었다…이들은 누가 안내라도 한 것처럼 성당 마당 옆 문화관 강당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손에는 아직도 화염병과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성당 정문께로 내려가 경찰 병력을 막는 표시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하나의 전장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찰병력이 성당 구내로 들어오진 않았다… “경찰 병력이 들어와 학생들을 연행해 가겠으니 양해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김수한 추기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경찰 병력이 들어와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먼저 나를 밟고 넘어가야하고, 그 다음에는 신부들을, 그 다음에는 수녀들을 밟고 넘어가야 할 거라고. (위의 책 138쪽) 옛날 생각이 절로 나서 인용해봤다. 지나간 일은 그립기만 하다더니 진정 그립기만 하네.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절대 아닐 것이고 그토록 인지한 표정 속에 저토록 단호한 정의가 살아 계셨다고 상기되는 걸로 보아서 바로 김추환 추기경이 그리운 것이 분명하다.

“학생들이 여기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그들이 이 자리를 택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오늘날 학생 시위에 대해 초강경책을 쓰고 있는 정부 당국 앞에서 이 학생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가 큰 고심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다가 경찰에 쫓기어 들어온 학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이 교회의 성역에 최루탄이 빗발치듯 난사될 때에 저는 우리 민족의 존엄과 긍지가 무너지는 위기마저 느꼈습니다. 선조들의 순교로 이루어진 이 성역이 무너질 때 국민 양심의 보루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언론 지면에 보도된 것처럼 농성 학생 전원 구속이 당국의 방침이었습니다. 또한 학생들은 호헌철폐와 민주화를 위해 이 자리에서 끝까지 투쟁한다는 강경 자세였습니다. 교회는 민주화를 위한 기본 정신에 있어서 학생들을 지지하면서도,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햐야 했습니다”(위의 책 140쪽) 며칠 후 그 날 들어온 학생들이 추기경의 뜻대로 무사히 집으로 귀가한 후에 집전한 미사에서 추기경의 하신 말씀이다. 어느듯 그가 선종하신지 10년이다. 그분은 가셨지만 아주 가시지 않고 내 마음에 이렇게 진작부터 부활해 계시니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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