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백용성 선사와 함양 화과원
진주성-백용성 선사와 함양 화과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14 15: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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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백용성 선사와 함양 화과원

흔히들 불교계에서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로 만해 한용운 선사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만해 선사가 불교계를 대표해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저항시를 통해 독립운동을 실천했기 때문에 만해 선사를 불교계의 대표적인 독립인사로 각인된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교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중에 한용운 선사 외에도 진종 백용성 선사가 있다. 한용운 선사와 함께 백용성 선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다. 용성 선사는 3·1 운동 당시 태극기를 흔들 것을 제안했다.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용성 선사는 여러모로 우리 지역과 인연이 깊다.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를 했고 함양 화과원(華果院)에서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용성 선사는 깨달은 스님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계에서는 조선 후기의 불맥인 지안 조사가 135년 만에 용성 선사로 환생하였다고 전해진다.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 기슭에는 일제 강점기에 용성 선사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농장인 화과원이 있다. 화과원은 용성 선사가 1927년 일제의 불교탄압에 맞서 세운 선농불교(禪農佛敎)의 실천장이자 산사였다. 명목은 사원의 경제자립을 위해 스님들 스스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었지만 용성 선사는 이곳에서 마련한 돈을 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지원했다.

용성 선사는 임야와 황무지 30여ha(90여만 평)를 매입해 화과원을 만들고 과수와 농작물을 심고 도자기를 구워 판매해 마련된 자금은 전북 군산항을 통해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간도의 독립군에게 보냈다. 화과원에는 16동의 건물에 수십명의 스님이 기거했다고 한다. 화과원에는 법당터와 선방터, 요사채터 6곳, 가마터, 과일저장고와 망루터 등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처럼 화과원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적지임에도 기념물로만 지정돼있을 뿐 보전 및 복원대책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화과원은 현재 경남도 기념물 제229호이자 국가 현충시설 지정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에 용성 선사의 나라사랑 발자취가 남겨져 있는 화과원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해 독립정신과 호국의지를 복원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함양군과 뜻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함양군은 화과원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해 학술세미나를 여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4월11일)을 맞아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뜻을 되새기는 차원에서도 수많은 독립지사의 독립자금원이 되었던 화과원을 조속히 국가 사적지로 지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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