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주차 전쟁-‘시민의식’이 답(答)이다
시론-주차 전쟁-‘시민의식’이 답(答)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14 16:0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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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
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주차 전쟁-‘시민의식’이 답(答)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엇(T. S. Eliot)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4월하면 ‘잔인한 달’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으로 눈을 한번 돌려보자. 신록의 계절, 축제의 계절, 꽃의 계절 4월 어디에도 잔인한 그 무엇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산과 들, 풀과 나무에 푸르름이 더해가면서 4월은 어느새 봄나들이 계절로 바뀐다. 여름 바다, 가을 단풍, 겨울 눈밭이 모두 행락객을 ‘오라!’ 손짓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들이 철’ 하면 역시 봄이 제철이다. 가까운 곳에 봄꽃축제라도 열리게 되면 행사장 주변엔 여지없이 수없는 인파가 넘쳐나고 주변 도로는 밀리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도로 정체는 그나마 양반이다. 막상 행사장 주변 주차장이 가까워지면 한마디로 ‘이를 어쩌나!’ 한차례 심한 홍역을 각오해야 한다. 나름 일찍 집을 나선다고 해도 막상 행사장에 도착해 보면 주차장은 이미 만 원, 그때부터 이른바 ‘주차전쟁’의 시작이다.

유원지나 축제장의 ‘주차전쟁’은 그나마 약과(藥果)라면 약과다. 한바탕 북새통 속에 진땀이야 빼겠지만 그것은 단지 ‘하루 고생’ 아닌가? 주차 문제를 주택가로 옮겨 생각해보면 이건 전혀 차원이 달라진다. 아파트나 신축 주거 단지 등은 그나마 좀 나은 편. 지은 지 오래된 일반주택들이 몰려있는 주거지역은 도대체 묘책이 없다. 차도(車道)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골목 비슷한 길도 차가 들어갈 수만 있으면 저녁시간에는 어김없이 주차장으로 바뀐다. 법규로 따지자면 엄연한 불법주차지만 상황이 이렇고 보면 행정의 단속도 차마 못 본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택가 이웃 간 주차시비는 이미 관행이 된지 오래다.

차량 폭증 시대, 우리 모두 자동차 홍수를 피해 갈 재간은 없다. 전후, 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가든, 섰든 차량 행렬이 넘쳐난다. 주차대란은 결코 소문난 유원지나 행사장, 주택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닥다닥 상가가 밀집된 재래시장 주변은 물론 큰 도로를 살짝 비껴난 도심 이면 도로 등은 언제나 위반 차량과 단속반원의 숨바꼭질의 대결장이다.

눈을 잠시 바깥으로 돌려 보자. 온 지구촌이 ‘현대 문명의 총아’라는 자동차로 뒤덮이다시피 한 요즘, 주차난은 거의 모든 나라들의 큰 골칫거리다. 일본 도쿄의 차고지 증명제, 영국 런던의 주차억제구역(CPZ: Controlled Parking Zone) 지정, 캐나다의 주차상한(Parking Maximum)제, 이탈리아의 도심부 주차 허가제, 네델란드의 ABC(주차관리)제 등 주차 난제를 풀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몸부림에 가깝다. 자동차 왕국 미국은 각 주(State)마다 주차관련 법규가 달라 어떻게 정리를 할 수가 없을 만큼 복잡하다.

지난 1997년 자동차 천만 대, 2014년 2000만 대 시대를 연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연말 2300만 대를 넘어서, 인구 2.2명당 한 대씩의 자동차 보유 대국이 되었다. 경남도만 해도 2018년 말 기준으로 196만여 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도내 가구 총수가 140여만이니 한 가구당 1.3대 꼴로 자동차를 갖고 있는 셈이다. 통계상으로는 도내 공영·부설주차장을 합쳐 그 수가 12만 3000여 개소에, 159만여 대분의 주차 면이 확보되어 있다고 한다. 숫자를 놓고만 본다면 주차장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막상 자동차가 거의 멈춰있는 야간에는 이들 주차장 대부분이 텅 비는 것을 감안하면 주차장 부족 현상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경남도는 올해 국비 68억 원을 배정받아 각 시군과 함께 주차환경개선 지원 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관공서와 학교 운동장을 야간에 개방하고 교회와 대형 마트 등의 주차장 개방에 시설비를 지원하는 ‘주차 공유제’ 도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거창군과 고성군, 함양군에서는 도로 양면을 짝·홀수 날로 나누어 번갈아 주차를 허용하는 ‘홀짝 주차제’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자동차 물결 속, 주차난 해결을 위해 아무리 행정력을 집중하더라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얽히고설킨 주차 갈등으로 이웃 간 살인이라는 참극까지 부른 ‘주차전쟁’을 풀 수 있는 열쇠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다. 수없이 강조되는 대중교통 활용도 그 하나지만, 서로 간의 양보와 배려심을 정착시켜 나가는 성숙한 시민의식만 한 해결책은 없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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