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소주보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
진주성-소주보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15 15: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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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
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소주보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

봄이라 꽃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작년 이맘때 심은 꽃은 제 몫을 다한 듯 꽃잎을 떨구었고 올 여름부터 내년 손님을 반갑게 맞이할 나무를 심었다.

카페 인테리어를 하면서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당장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이 지나야 제 몫을 하는 게 나무다.

무작정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만큼 지루한 것은 없지만, 희망이 있는 기다림은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소주는 유통기한이 없다. 20도 이상의 도수에서는 잡균이 번식하질 못하고 변질될 우려가 없기 때문에 맛과 향 또한 변화가 없다.

하지만 막걸리 유통기간은 살균여부에 따라 양조장마다 10일부터 1년까지 다양하게 있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은 맛과 향이 변한다는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단맛은 줄어들고 신맛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이 증가하게 된다.

숙성된 막걸리나 오랜 시간 보관된 와인을 마시다보면 원재료가 무엇인지 모를 만큼 다른 향과 맛과 난다.

일 년가량 잘 익은 막걸리 한 잔에서 시간에 따른 맛의 다름을 맛 볼 수 있고, 20년 넘은 와인에서는 세월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나 어떻게 숙성되는지에 따라 만나면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고, 마시면 술 같지 않은 술이 있고, 차(茶)같지 않은 향을 지닌 차를 마실 수 있다.

이삼십 대에는 미모가 아름다운 여자만 보이다가 막걸리 좋아하는 나이가 되니 생각이 통하고 삶의 숙성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된다.

사람은 같은 것을 자주 보게 되면 질리게 된다.

회사마다 새로운 폰을 만들고, 성능과 디자인을 바꾼 자동차와 신상 옷들이 계절마다 쏟아져 나온다. 요즘에는 새로움도 너무 빠르게 헌 것으로 바뀌다 보니 새로운 것 보다는 잘 숙성된 것이 사랑스럽고 더 좋아 보인다.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당장 사람을 가르친다고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사계절이 지나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야 제 모습을 갖추고 나름 티가 난다.

숙성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희망을 갖고 인고의 시간을 즐겨야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막걸리 제조 일자가 있는 것은 마시면 안 되는 날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잘 익은 날을 알려주는 숙성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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