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독립 유공자 조진규 지사 추모비 정화
함안군 독립 유공자 조진규 지사 추모비 정화
  • 김영찬기자
  • 승인 2019.04.15 16:08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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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나이 함안읍 만세 운동 시작으로 평생 항일투쟁
▲ 조금세 학교바로세우기 전국연합 회장 조부 조진규 지사 추모비 정화사업 기념행사가 지난 13일 함안면 괴산리에서 성대히 열렸다.

조금세 학교바로세우기 전국연합 회장(전 부산교총회장) 조부 조진규 지사 추모비 정화사업 기념행사가 지난 13일 함안면 괴산리에서 성대히 열렸다.


군에 따르면 조웅제 부군수, 정원규 면장을 비롯해 내빈, 함안면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진규 지사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추모비를 재 단장했다.

이어 함안면 괴산리 동민들에게 경로잔치를 베풀었다.

조진규 지사는 1904년 9월 15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서 태어났다. 16세의 나이로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38세로 작고 할 때까지 다양한 항일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함안 경찰 주재소 및 함안 등기소 등에 돌을 던지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와 지국장을 지냈으며, 함안 형평사 창립 임시 의장, 함안 소작인 조합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일제의 착취와 탄압을 막아내고 주민 계도에 앞장섰다.

1924년 청년단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벌였고, 1926년 6·10 만세 운동 때에는 예비 검속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1927년 상해 독립단 경남 대표로 선임되, 안재홍, 여운형 등과 대한 독립을 논의했다.

또한 이석건, 조한휘와 함께 신간회 함안 지회를 결성하고, 농민 조합도 만들어 항일 투쟁을 하다가 체포됐다.

1931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당에 입당하고, 1935년 나진·웅기 등지에서 노동 쟁의를 주도하다 신경[新京] 감옥에 구금 되었다가 귀국했다.

김진규 지사는 옥살이와 울분이 병이 되어 1941년 8월 10일 38살의 나이로 사망, 아들 조용태, 손 자녀 조금세, 민제, 찬제, 신제, 경선, 경순이다.

그는 2018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묘지는 함안군 칠원읍 무릉 선영에 안장되어 있다. 김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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