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우리는 기억하는가
아침을 열며-우리는 기억하는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16 15: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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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우리는 기억하는가

사월이다. 오래 전 누군가가 '잔인한 사월'이라 했다. 새싹이 정말 스프링처럼 퐁퐁 돋아나고 이어 온갖 꽃들이 튀밥처럼 꽃잎을 틔우는 것이다. 길어진 낮의 햇살은 따스하고 포근하면서도 찬란하다. 새싹은 돋았나 싶으면 이내 무섭게 자라 검푸르게 된다. 꽃은 이제 활짝 피는가 싶으면 성급한 꽃 이파리는 이미 땅에 떨어져 딩구는 것이다. 목련의 하얀 꽃잎이 땅에 떨어져 흙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봄을 잃을 슬픔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봄이 찬연한 만큼 그것과의 이별은 더욱 아리다. 이렇듯 모든 찬란함에는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픔이 숨어 있다.

우리에게 사월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고대하며 기다린 만큼 어쩐지 두렵기도 한 시절이었다. 긴 겨울을 견뎌내며 학수고대하던 봄이라 자연히 드는 마음일 것이다. 게다가 곧이어 따라오는 무더위에 대한 두려움이 봄을 더 애틋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세월호’라는 가슴 아픈 기억을 더해야 하는 사월이 되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움이 더 한다. 왜 우리는 '세월호 침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한 구조팀과 관계된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원 구조'라는 두고두고 사랑스런 그 말을 남기지 못했는가. 분명 그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세월호가 귀한 생명들과 함께 가라앉은 세월이 벌써 오 년이 지났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잊은 건 아닌가.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말이다. 나만해도 당시에는 안산으로 간다, 평목항으로 간다 해서 분주했는데 말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도 마음이 슬퍼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단식으로 뼈만 남은 피해자 아빠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든 돕고 싶고 도울 길은 없고 기도만 하염없이 했는데. 기도, 실은 기도하다가 분노가 더 기세를 부렸다. 내가 할 일이 기도밖에 없는 그 무기력이 너무 죄스러웠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너무 미안했다.

옛말에 부모는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핏덩이를 낳아서 이제 다 키웠구나 싶은 때에 자식을 가슴에 묻은 희생자 부모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지금도 생각날 때면 마찬가지다. 전원 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왜 못 구했는가.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가. 특히 선장과 선원들은 배를 빠져 나가는 그 순간까지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고 퇴선 안내를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게만 했더라면 전원구조라는 쾌거를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우리나라의 구조 능력에 대한 긍지로 뿌듯했을 텐데.

무엇보다 희생자 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남은 가족들은 오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상심하겠는가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는 상실감보다 그리움이 짙어질 것이다. 그리움, 그것은 당장의 상실감보다 더욱 괴로울 것이다. 천지사방 어디로 가서 위로를 받을 수도 없다. 그리움의 대상에는 아무것도 대신할 수도 없다. 오직 그 ‘대상’이 돌아와야만 해결된다.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새삼 전원 구조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당시 정부를 정말이지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게 된다, 그것이 대안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내 증오나 마음이 희생자나 가족에게 직접 도움이 못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렇다고 잊어버리는 건 도리가 아니다. 내 삶이 아무리 절박하고 바쁘다고 해도 그래서는 안 되겠다. 그것이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모여서 그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권력과 돈이라는 이상한 괴물이 호시탐탐 완벽하게 장악해서 완벽하게 지배하려고 노리는 것 또한 엄연하다. 세월호 참사가 그 두 괴물과 관련이 있든 없든 우리가 잊는 순간 그 괴물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그게 잊지 말아야 할 까닭의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절대 잊지 않아야 하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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