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3) ‘부귀와 정의’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3) ‘부귀와 정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17 15: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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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3) ‘부귀와 정의’

바이두의 뉴스에 한국 연예계 추문(버닝썬 사건)이 보도되었다. ‘왜 하필…’ ‘또 이런…’ 심중이 복잡했다. 그 복잡함 속에 부끄러움이 있었다. 베이징의 지하철에서 옆자리의 한 젊은이가 폰으로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는 걸 보고 흐뭇했던 게 바로 어제 일인데... 그 중국 젊은이는 이런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그런데 그 기사 밑에 무수히 달린 댓글들을 훑어보다가 나는 경악했다. “한국은 정치인들도 대중을 배신했고 연예인들도 이렇게 대중을 배신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눈에 보인다.” 대충 그런 내용의 댓글이 있었고 거기에 ‘좋아요’를 누른 숫자가 천개를 넘어 있었던 것이다. 할말을 잊었다. 국내에서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여긴 외국이 아닌가. 외국인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건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반박할 여지도 없다. 모래를 씹는 듯한 느낌.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치의 붕괴! 나의 진단은 언제나 동일하다. 우리는 ‘인간의 기본’을 과거의 어딘가에 내다버리고 지금 이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인기’를 누린 추문의 주인공들도 아마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인간의 기본? 그런 가치에 지금 거의 아무도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눈들이 오로지 ‘이익’만을, 특히 돈만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나는 돈의 가치를 경시하지 않는다. 이 자본만능의 시대에 누가 감히 돈에 대해 외람된 시비를 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 돈의 색깔에 대해, 그 채도와 명도에 대해, 돈의 미학과 윤리학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흰 돈과 검은 돈, 밝은 돈과 어두운 돈,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 돈에도 종류가 많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돈은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옛날 공자가 말했듯 이 ‘富’라는 것은 ‘貴’[정치적 권력 혹은 지위]와 더불어 ‘정의롭게’ 취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득지 불거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득지 불거야.) 돈과 권력-지위는 오직 정의로운 방법으로서만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철학이 바로 이곳 중국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 가치가 수천년 동안 알게 모르게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 밑바탕에는 의롭지 못한 부, 의롭지 못한 귀가 있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그 옛날 공자 당시의 중국사회와 꼭 마찬가지로,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부와 권력-지위 명예를 탐하는 그런 현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버닝썬’ 사건은 그 한 상징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그 ‘돈의 어두움’의 한 기원이 ‘부동산 투기’에 의한 부의 획득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들도 개인들도 다를 바 없다. ‘투자’니 ‘재테크니’ 하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불로소득’이라는 점이다. 이재에 무심한 건전한 근로자들은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그렇게 해서 그 성실한 근로는 빛을 잃는다.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들의 부자 되지 못함이 신령한 돈을 숭배하지 않은 불경죄라고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건전한 사회’라면 한번쯤은 그 돈의 ‘정의로움’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방법이 아마 전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토지공개념이나 부동산보유세의 강화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투기를 일정 부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투기로 돈을 벌어봐야 결국은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의식을 사람들의 의식에 형성시켜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경제적 관심을 건전한 근로와 생산과 유통으로 돌리는 것이다. 반면 건전한 근로와 생산에 대해서는 세금혜택 정부지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면 그쪽으로 투자의욕 근로의욕이 발생한다. 그런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부’의 건전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내가 소원하는 ‘질적인 고급국가’는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깨끗한 돈을 통한 부귀의 추구라는 인간의 기본을 아이러니 하게도 2500년 전부터 그다지 그렇지 못했던 이곳 중국에서, 그 심장인 베이징에서 생각해본다. 오늘은 공기가 맑고 하늘이 푸르다. 베이징에도 맑은 봄같은 봄날이 있다. 꽃도 예쁘게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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