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부산 여성항일 포상자 26명
진주성-경남 부산 여성항일 포상자 26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17 15: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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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 부산 여성항일 포상자 26명

부산, 울산, 경남 출신으로 항일투쟁 공적으로 정부 포상을 받은 여성은 26명뿐이다. 여성 항일투사 포상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윤옥 박사가 쓴 <여성항일운동가 300인>에 의하면 부산, 경남, 울산지역에서 태어난 여성항일투사들은 모두 26명이며 경남은 16명이다.

1907~1908년 사이에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참여해 금반지, 은반지, 목걸이 현금을 내 놓고 공을 세웠으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국채보상운동부터 여성들의 활동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3·1운동에 동참하다 옥고를 치른 분들이 많으나 군자금 모금, 신사참배 반대, 교육자 활동, 노동활동, 학생운동 등 다양하게 활동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기생이지만 애국 애족심이 뛰어난 이소선. 정막내 등은 통영 기생조합소에서 5명의 기생들이 기생단을 조직해 금반지를 팔아 마련한 하얀색 옷을 갈아입고 1919년 4월 2일 낮 3시 30분 시내로 나가 수천 군중과 함께 시위하다 잡혀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덕실 선생은 항일투사 한규상 선생과 약혼한 사이로 진주 3.1운동에 동참하고 투옥된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혈성단을 조직해 상해 임시정부를 위해 군자금을 모아 전달하고 대한애국부인회 진주지회장 근우회에서 활동한 분으로 2018년 8월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이금복 선생은 부산에서 공장에 다니며 노조활동을 전개하다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고 삼천포 야학교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다 피체되어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 옥고를 치른 분이다.

정금자, 이을래 선생은 진주여고 재학 중 진주고 학생들과 함께 전단지와 태극기를 들고 진주시내에서 시위하다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2018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최봉선 선생은 마산 의신학교 재학 중 결사단을 조직해 1919년 3월 21일 의신학교, 창신학교 학생들을 모아 3000여 명을 지도해 시위했다. 이어 1927년 3월 친일파 도평의원을 규탄하는 대열에 동참해 박봉삼, 황덕윤, 황봉석 등과 함께 투쟁하다 1928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 외 근우회 대한부인회 여성애국부인회 등이 있고 김금연, 김두석, 김봉애, 김응수, 김조이, 김필수, 이명시, 주순이, 홍순남 등이 여성항일투사로 정부 포상이 추서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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