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시론-선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21 15:5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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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한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던 한진그룹의 수장이자 한진가의 가장인 조양호 회장이 지난 8일 미국에서 사망했다. 향년 70세. 근자의 추세로 보면 많은 나이가 아니다. 장녀 조현아의 ‘땅콩회항사건’으로 시작되어 부인 이명희 및 차녀 조현민의 ‘갑질논란’을 거치면서,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정신적인 타격 또한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한국인의 심성인데, 이 경우에는 별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빈소에 조문객은 넘치지만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가진 자의 오만과 공익을 외면한 여러 사례들이 쌓여서, 측은지심이 일어날 수 없도록 작용하는 것 같다.

조 회장의 타계는 광복 이래 70여 년 현대사에 있어서 한국의 기업이 가져야 할 인식 변화의 한 분기점을 말해준다. 그동안 오랜 관행이었던 오너 중심의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기업 공동체의 의지를 수렴하면서 경영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거기에 기업의 이윤을 통해 사회적 기여를 실천해야 한다는 항목도 결부되어 있다. 물론 조 회장에게 ‘천인공노’할 죄목만 덧씌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부친 조중훈 창업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을 굴지의 대기업으로 육성했으며, 항공산업 분야에서 큰 역할을 했다. 아무리 ‘과(過)’가 많아 지탄받는 인물이라도 그의 ‘공(功)’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특히 그 부친 조중훈 회장의 기업관과 한국 경제개발 초기의 역할을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감회를 누르기 어렵다. 1969년 3월 한진상사는 당시 정부로부터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고 대한항공으로 이름을 바꾸어 영업을 시작했다. 창업주 조 회장은 인수를 반대하던 임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과만 예측하고 시작하거나, 이익만을 생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업이 아니다. 모두에게 유익한 사업이라면 모든 어려움과 싸우면서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기업의 진정한 보람이 아니겠는가” 이만한 기업 경영의 정신과 논리가 있었기에 이제까지의 대한항공이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조중훈 회장의 감동적인 창업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6·25동란 발발 후 조 회장이 운영하던 물류회사의 운수트럭들은 모두 국가에 헌납되었다. 사업에 실패한 그는 낡은 트럭 한 대로 미군부대 청소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경인가도를 달리다가 차가 고장 나 어쩌지 못하고 있는 외국 여성을 발견하고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땀 흘리며 차를 수리해주었다. 그리고는 한 푼의 사례비도 받지 않고 밝게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여성의 남편이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고, 이 젊은이에게 감동한 사령관은 미군에서 폐차되는 차량을 불하받고 싶다는 요청을 들어주었다. 폐차를 고치는 것은 그의 숙련된 능력이었으며, 그 폐차들이 중고차로 승격(?)하면서 지금 한진그룹의 모태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훌륭한 선진의 업적을 후손이 잘 계승해 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조선조 초기의 뛰어난 군주로 평가되는 성종이 그 아들 연산군을 계도하지 못했다. 중국 전국시대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도 그 아들 호해의 대를 넘기지 못했다. 이는 한진의 조 씨 가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역사의 교훈이 아닐까.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가르치고 있는데, 기실 서 있을 때 넘어질 날을 생각하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특히 자녀를 훈육하는 문제는, 상황 판단보다 혈육의 정이 앞서는 터이라 더욱 그렇다. 조양호 회장의 별세 소식에 잇대어 일어나는 절실한 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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