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나의 마지막 제자
아침을 열며-나의 마지막 제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23 15: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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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나의 마지막 제자

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르치는 일을 거의 몇 십 년을 해왔다. 그러는 동안에 제법 많은 제자들이 내 마음을 거쳐갔다. 이제 아들이 장성하여 가르치던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고 몇 명 남지 않았던 제자들도 제 갈 길로 가고 마지막으로 한 녀석이 남았다. 그러자, 이 마지막 제자를 ‘녀석’이라고 부르자. 그러면 왠지 더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녀석은 친구들과 다른 학원으로 가라고 해도 기어이 나와 함께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하는 수없이 다락방에다 공간을 마련해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일 년 전에 녀석과의 관계에 위기를 맞아야 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계신다. 딸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함께 살게 되었다. 흔히 노랭이라고 부르는 한국 토종 고양이들이다. 동글이라고 하는 한 마리는 이웃집에서 분양을 받았다. 다른 한 마리는 이름이 땡글이인데 동물병원에서 데리고 온 고양이다. 동글이가 아파서 간 병원에서 분양을 권해서 받아왔다. 처음 우리 집으로 온 땡글이는 진짜 너무너무 귀여웠다. 그게 너무 귀여워 아예 자라지 말고 있었으면 했는데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둘 다 어른이 되어 중년 고양이가 되었다. 나도 제법 잘하는 캣맘이 됐다.

문제는 녀석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서워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를 해서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녀석이 아직도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걸 사소하게 여긴 내가 한 마디 했다. “고양이는 니가 더 무서워. 무가 무섭다고 매번 난리니? 남자가 돼갖고” 그랬더니 녀석은 그 말이 서운해서 “남자가 무서워할 수도 있지 뭘 그래요?” 녀석은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다른 친구들까지 몰고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제자들에게 배신을 맞고 이제 가르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는데 녀석이 제 발로 찾아와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지막 제자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라는 건 애초 자기 자신도 잘 모르고 지나다가 예민해지는 어떤 시기에 알아차리기 일쑤다. 그간에는 녀석이 공부하는 공간과 고양이가 생활하는 공간이 그다지 밀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바로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한 다락방이 실은 고양이들의 집이었던 것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정도인 줄 알고 공부하는 곳으로 오면 쫓아버리면 됐는데. 이젠 녀석이 다락방에만 들어오면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고 머리가 아프고, 참으로 난감했다.

“차라리 니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으로 가는 게 어떠니?” 고민 끝에 내가 넌지시 말하자 녀석은 싫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다짐한 이번 중간고사 성적 올리는 일을 꼭 해내고 싶다고 한 번 더 다짐하는 것이었다. 중간고사는 네 과목을 보는데 평점 98점으로 성적을 올리는 게 목표다. 어떡해, 원래 공부하던 공간을 사용하는 아들에게 사정을 할 수밖에. 아들은 자기가 일을 마치는 시간인 밤 아홉 시에 맞춰 수업을 하라는 것이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8시면 손님도 끊어지니 그 시간에 녀석과의 수업을 하기로 했다. 하이고, 사는 거 하곤.

이미 내 아들 중학교 시절을 전교 수석으로 수학하게 한 경험을 십분 살려 녀석을 격려하고 있다. 녀석도 이에 호응해서 휴일인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는 피시방도 안 가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수학과 역사 공부를 마스터했다고 금방 문자가 왔다. 국어 과목은 녀석이 워낙에 기본 실력이 있다. 문제는 영어인데 아직 며칠의 준비 기간이 남았으니 어렵기는 하겠지만 넘지 못할 난관은 아니다. 영어를 특히 어려워하기는 했지만 부쩍 실력이 늘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피시방을 좋아하고 축구광이기까지 한 녀석인데. 사람의 성장을 본다는 건 행복 중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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