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판문점선언 1년, 봄 타령 그만 하자
시론-판문점선언 1년, 봄 타령 그만 하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24 15:3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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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
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판문점선언 1년, 봄 타령 그만 하자

작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비핵화 실현, 연내 종전선언, 고위급회담 개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평화가 눈앞에 온 듯 들떴고, 그리고 지금 한·미·일·중 4개국 민간 아티스트와 함께 1주년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선언은 선언이었을 뿐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은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개설 정도였다. 그것도 지난 3월 22일 북측은 ‘상부의 지시’라며 일방적으로 철수해버렸다. 북측은 철수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우리도 묻지 않았기에 북한의 하노이 결렬 반발이니 대남 압박이니 추측만 난무했다. 그러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제재 철회 발언이 나오자, 북측은 사흘만에 아무런 설명 없이 슬그머니 복귀했다. 한국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매주 개최되던 연락사무소장 회의는 그후 열리지 않고 있고 우리측 소장인 통일부 차관은 혹시나 매주 출근하고 있다.

판문점선언은 처음부터 새로운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북한이 해온 주장의 반복에 불과했고, 오히려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의 핵우산 철폐 등 한미동맹의 축소를 초래할 위험이 컸다. 그리고 판문점선언 이후 한국 정부가 중재자를 자처한 가운데 열린 미북 정상회담은 표류하고 있다. ‘미국의 핵폐기’와 ‘북한의 핵보유’가 맞선 가운데, 한국 정부는 눈앞의 평화에만 천착하여 단계적 해법과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해 왔다. 우리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국내외 언론 보도가 나타났고 해외언론에서는 ‘북한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비유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이 말이 국회에서 쟁점화되면서 세계 언론의 화제가 되어 결국 수석대변인 표현을 세계적으로 유포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한국이 ‘제재의 구멍’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의 공해상 선박 환적을 단속하기 위한 국제 군사작전이 미국을 중심으로 개시되어도 한국은 배제되고, 한국 국적의 유조선은 대북제재 위반 명단에까지 올랐다. 점점 ‘북한 편들기’로 규정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은 한국 정부가 ‘중재자의 오지랖’은 그만두고 ‘당사자’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노골적인 ‘반미 민족공조’ 요구이다.

한미동맹은 위기에 빠지고 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중단되고 한미 정상회담은 2분짜리 단독회담이 되었다. 중국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수시로 침범하고, 한일관계는 반일과 혐한으로 역사문제 뿐만 아니라 외교와 경제 현안에서 최악을 치닫고 있다. 북한만 바라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북한이 입으로는 동결을 말하면서도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대량화하기 위한 활동을 몰래 계속하고 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2017년 북한이 제6차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16번 발사함으로써 한반도는 공포와 절망의 시간에 빠져들었지만 천지개벽 같은 판문점선언으로 마침내 ‘한반도 평화의 봄’이 왔다면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말자 한다. 그래서인가 1주년 행사를 봄꽃구경 하듯 연다고 한다. 4월은 봄의 계절이다. 그런데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말하기도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비슷한 봄이라도 온 적이 있었던가? 겨울을 거치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여전히 겨울이다. 다만 사람들은 긴 겨울에 봄을 그리워하고, 정치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희롱할 뿐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만 한다. 한겨울에 봄 타령하며 얇은 옷을 입고 놀러 다니면 얼어 죽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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