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4) ‘언어-의식-가치’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4) ‘언어-의식-가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24 15: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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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4) ‘언어-의식-가치’

북경 BKBN이라는 모임과 인연이 닿아 특강을 하게 되었다. 회장, 사장, 고문, 부총재, 변호사 등 쟁쟁한 기업인들이 많아 느낌이 새로웠다. 예전 학교에서 인문최고과정을 할 때와 좀 비슷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의외로 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고 진지해서 고맙기도 했다. 행사 후 식사자리가 이어졌고 담소가 오고갔다. 온갖 화제가 오르내리던 중,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가지 질문을 그분들에게 던져 봤다. “중국에 오래 사시면서 인상적으로 자주 들리는 단어 같은 게 혹시 없던가요?” (이건 내가 평소 강의시간에 다루던 주제의 하나였다. 우리는 보통 언어라고 하는 정신적 대기 속에서 사회적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의식을 형성하고 언어가 의식을 현시한다는 나의 언어철학이다. 미국사회의 ‘thank you’ ‘respect’ ‘share’, 독일사회의 ‘Verboten’ ‘Debatte’, 프랑스사회의 ‘tolerance’ ‘l’autre’, 일본사회의 ‘すみません’ ‘めいわく’ ‘がんばる’같은 것이 그 구체적 사례다.) 그랬더니 그 중 한분이 “뿌싱!” “뿌쯔다오!” “메이꽌시” 같은 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분은 “공산당” “주석” “사회주의” 같은 정치적 단어들이 자주 들린다고 말해줬다.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의미있다고 생각되었다.

경제적 성장 때문에 우리는 자주 깜빡 잊고는 하는데 중국은 엄연히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하는 사회주의 국가다. 대학에도 공산당 조직이 끼어들어 있고, 기업도 사실상 공산당 조직의 일부라고 들었다. (양회의 결정사항은 기업인도 학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호텔에서의 모임 같은 것도 20명이 넘으면 신고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직원이 공안에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회의 전분야가 당의 감시와 지도하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길거리에는 “대당(对党)충성” “공산당은 좋고 만백성은 즐겁다(共产党好,百姓乐)” 같은 구호도 눈에 띈다. 이런 게 얼마나 가겠느냐는 비판의 목소리와 이 거대한 국가를 경영하려면 이런 독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 둘 다가 공존하는 것 같다. 그쪽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둘 다 일리는 있는 것 같다. 민주와 자유라는 말도 자주 들리는데 그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고도 했다. 내가 아는 북경대의 교수 한분은 공산당의 폭거인 문혁과 천안문 사태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도 했다. 당은 국가를 위해서라도 그 지배를 절대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인민들도 지금의 경제적 풍요와 국제적 지위(G2)에 만족감과 자부심-긍지를 지니고 있어 당에 대한 저항이 미미하다고도 했다. (물론 상대적 빈곤에 대한 반감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아마 양면이 다 있을 것이고 다 필요할 것이다. 이런 중국에 비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나큰 혜택 혹은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일본의 친구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자랑하기도 했다. 일본의 그것은 패전에 따른 뜻밖의 선물인데다 사실상 자민당 일당독재인데 비해 한국의 그것은 피로써 쟁취한 것이니 그 질이 다르다는 취지였다. 중국에 비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패거리문화와 무능을 보면 그 자랑이 무색해지고 만다. 여야 좌우 보혁을 불문하고 서로 머리를 맛대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고민하는 진정한 정치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한편 “안돼!” “몰라!” “상관없다”라는 말들은 중국사회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경직성이라고나 할까? 관료주의라고 할까? 무원칙주의라고 할까? 이런 말들은 어쩌면 외국인이기에, 특히 기업을 하는 외국인이기에, 자주 듣는 말일지도 모른다. 좀 더 관심있게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직접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푸(福)”라는 글자(특히 복이 하늘에서 쏟아지라며 거꾸로 붙인 글자), “시(囍)”라는 글자,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 양쪽 기둥에도 이 글자가 붙어 있다.) 그리고 축하를 의미하는 “콰일러(快乐)”이라는 글자,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신(鑫)”이라는 글자, “펑(丰)”(=豊)이라는 글자, 또 이들이 너무나 자주 입에 올리는 ‘하오(好)’라는 말 등이다. 이 글자들에 일반 중국인들이 삶에서 지향하는 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명절 폭죽도 그리고 사원의 향불도, 이들은 그 양만큼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내세관이 가장 희박한 게 중국인이라는 말도 들었다. 특히 이들은 기복적인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비단장수 왕서방’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중국의 부, 경제력, 그게 우연한 결과가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든 결과는 다 보이지 않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심해두자. 의식이 현실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의식을 언어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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