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작은 마을회관에도 ‘멋’과 ‘얼’을 담아보자
시론-작은 마을회관에도 ‘멋’과 ‘얼’을 담아보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28 15:4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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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문학박사·고성향토문화선양회 회장
어릴 적 자랐던 고향마을은 언제나 찾아도 정겹다. 봄이면 진달래가 붉게 물들던 야트막한 야산, 마을 어귀를 돌아 흐르는 작은 실개천, 파랗게 보리가 자란 들판 한가운데 티 나게 우뚝 선 정자나무까지 늘 보아도 옛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러나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안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금방 생각이 달라진다. 갈 때마다는 아니지만 어느새 변해있는 마을 모습에 ‘언제 이렇게 까지!’ 하고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뜰 때가 많다. 개개인이 사는 주택 모습은 물론이고 웬만한 자동차는 모두 들락거릴 만큼 넓혀진 골목길이나 자투리 공터마다 곱게 심겨진 꽃나무 등 변모는 곳곳에서 절로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놀랄만한 큰 변화는 작은 마을에서까지 만나게 되는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마을보건소 등 소규모 복지 시설들이다. '아! 이런 동네까지!'하는 산골마을도 이 정도의 복지시설은 빠진 곳이 거의 없다. 지난해 연말통계를 보면 경남도내 마을회관 수가 5012개소로 이미 5000곳을 넘어섰다. 도내 경로당 수는 무려 7300여 곳을 헤아린다. 보건소 숫자는 보건지소까지 합치면 200여 곳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살림살이가 그 만큼 넉넉해진 탓인가? 각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이 그만큼 커진 것인가? 어찌됐던 ‘우리의 시골 마을들도 이제 이만큼 삶의 여유를 갖고 살게 되었나 보다.’라는 뿌듯함을 맛보게 된다.

이 같은 변화와 자랑, 뿌듯함 이면에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이 있다. 그 수많은 마을회관과 노인정, 보건소 등의 건물 모양새 때문이다. 딱딱해 보이는 4각형 콘크리트 골조, 천편일률식이다. 어디를 가도, 어느 쪽을 보아도 비슷하거나 닮은 모습이다. “산 넘어 양지마을 마을회관은 어떻게 집을 그렇게 예쁘게 지었을까!” “맞아! 건너 동네 한옥모양의 노인정은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멋지지 않아?” “우리 면의 보건소는 들어서기 전에 미리 겉모습만 보아도 병이 절로 낫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 이런 상황을 떠올려 보는 것은 너무 호사스런 상상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누구나 수많은 공공건축물을 드나들게 되고 또 그 안의 온갖 시설들을 이용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들 복지시설들을 신축, 관리해온 행정기관에서는 이 시설들의 수적 확충에 매달리다시피 해온 게 사실이다. 밀려오는 주민들의 요구를 따라가자니 시간도 쫓기고, 예산도 부족하고…미처 건물의 모양새까지 신경 쓸 새가 없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중 그나마 서울시 같은 곳은 2013년 이미 ‘서울건축선언’을 제정·선포해 서울시가 짓는 공공건축물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컨셉(concept)과 요건 등을 정립·규정해 두고 있다. 경상남도도 지난 2016년 9월 ‘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을 만들어 공포·시행하고 있지만 이 준칙은 주로 아파트 같은 공동주거단지에 관한 제반 사항을 규정해 둔 정도이다.

공공건축물 건립의 기본 철학이랄까, 정신을 얘기할 때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건물이 호주 수도 캔버라(Canberra)에 있는 국회의사당(New Parliament House)이다. 이 건물이 자주 회자되는 것은 결코 그 건물의 웅장한 규모나 외양 때문이 아니다. 이 건물이 품고 있는 호주 국민에 대한 ‘겸손의 철학’ 때문이다. Capital Hill 꼭대기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세계 최고 높이 81m의 깃대만 우뚝 서 있을 뿐 건물 전체가 모두 지하로 들어가 있다. “나라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 국민보다 아래에서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기본정신과 함께 의회빌딩을 방문하는 국민들의 접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이미 지어져 있는 문화원 건물이나 마을회관, 경로당 등 문화·복지 시설에 당장 호주 국회의사당 같은 거창한 건축정신이나 철학을 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공공건축물, 특히 우리 생활과 밀착해 있는 이들 기본 복지 시설들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할 때 우리도 이제 이들 시설의 숫자나 기능 만에 몰입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기와지붕에 추녀곡선이 돋보이는 우리 전통가옥의 건축미나 오랜 세월 ‘멋’을 추구해온 우리민족의 ‘얼’을 이런 건축물에도 한번 접목시켜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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