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비포장 신장로길과 징검다리
기고-비포장 신장로길과 징검다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4.30 15:1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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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비포장 신장로길과 징검다리

첩첩 산골 학교길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다. 비포장 길이지만 계절 따라 새 옷을 갈아입고 오고 가는 길손님께 다양하게 인사를 한다. 이른 봄날에는 보랏빛 작은 제비꽃과 윤기가 반짝이는 애기 순들이 실바람에 나부끼며 인사하고 여름이면 진한 초록색으로 시원함을 흔들며 선사하고, 가을이면 수줍은 코스모스며 오색찬란한 오곡과 단풍들…겨울이면 가지마다 하얀 눈꽃으로 맞이한다. 청정지역 산골 등굣길은 활기가 넘친다. 먼 곳에 사는 애들은 이른 새벽부터 책 보따리를 허리춤에 메고 뛰기 시작한다. 남자 애들은 굴렁쇠도 굴리고 여자 애들은 줄넘기도 하며 힘든 줄 모르고 다닌다.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다니는 덕분에 시골 아이들이 대체로 운동을 잘하지 않았나 싶다. 아직까지 건강한 것도 아마 그때 단련된 체력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다.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리어카에 짐을 싣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시키지 않아도 리어카 뒤를 밀어 드리는 미풍양속이 있다.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찌는 듯 한 삼복더위 강열한 태양을 고스란히 받으며 걸어가야 하고 강풍이 몰아치고 살갗이 터질 듯 한 혹독한 추위에도 오직 비포장 길을 걸어야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고생인줄 모르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비가 오면 비포장 신작로에는 크고 작은 지렁이가 올라온다. 잘못하여 발에 밟히면 심하게 꿈틀댄다. 그러면 미안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해서 밟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지렁이를 피해서 집에 도착하면 목이 뻐근하다.

개울에는 나란히 놓여있는 정겨운 징검다리. 가위, 바위, 보 하며 정답게 건너다니던 추억속의 징검다리는 비가 많이 오면 물속에 잠겨 버린다. 봄, 여름, 가을까지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 때문에 발이 시려워 물속에 들어가기가 고통스럽다. 그러면 후배 동생들을 위해 선배오빠나, 언니들이 얼음물인데도 불사하고 건네준다. 선배들이 졸업하면 그 밑에 후배가 대물림 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자기 한 몸 희생하면 동생들은 편안하게 손발 시려운 고통을 느끼지 않고 학교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남자아이 한명이 있다. 나보다 한살 위의 그 아이는 몸은 부자연스럽지만 착하고 공부를 참 잘했던 아이였는데 내가 졸업할 때까지 업어 건네주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몸이 불편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수년이 흐른 후 친정 동네에서 만난 그 친구는 “내가 콧물과 침을 많이 흘려 더러웠을텐데 항상 업어 건네주어 고마웠어.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전해 주었다.

비가 와서 냇물이 많은 날이면 어김없이 지각을 하는 나를 선생님께서 물으셨는데 수줍음이 많은 나는 귓불까지 빨갛게 되어 모기만한 소리로 동생들 냇물을 건너 주느라 늦었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에 비가오고 지각을 하는 날이면 담임선생님께서 다정하신 목소리로 “오늘도 많이 업어 건너 주었냐? 너는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참 대견하다”고 하셨다. 수업 중에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냇물이 황토색이었고 엄청난 속도의 물살을 보고 있으니 어지럼증이 생긴다. 건너야 하는 냇물은 각각 다른 골짜기에서 합류 되어 내려가는 곳이기에 물은 엄청난 양으로 내려간다. 언니와 나는 어지럽게 내려가는 물살을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우리 마을 윗동네 사는 큰오빠 또래의 청년이 오더니 옷을 벗어 돌돌 말아 머리에 이고 팬티만 입고서 물살을 헤치며 대각선으로 살랑살랑 건너가는 그 청년이 무척 부러웠다.

“언니야 우리도 저렇게 건너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치?” 언니와 둘이는 손을 잡고 면소재지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서 자려고 누웠지만 청년이 물 건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 밤중에 언니와 손잡고 냇가에 나와 보니 쏜살같이 내려가는 냇물의 양은 빠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수년이 흐른 뒤 다리도 생기고 이제는 1041번 지방도로 2차선 아스팔트가 삼리까지 포장되어 편리하고 좋긴 하지만 그 옛날 비포장도로와 나란히 줄을 지어 정겹게 놓였던 징검다리가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 나이가 든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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