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완도군 청산도의 초분(草墳)
진주성-완도군 청산도의 초분(草墳)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02 14: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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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완도군 청산도의 초분(草墳)

청산도는 완도의 동남쪽 27km의 다도해에 있는 섬으로 완도항에서 청산도 도청항까지 35분이 소요된다. 청산도의 면적은 33.2㎢이고 24개 자연부락에 인구는 5000여명이 주민은 임진왜란 이후에 육지에서 들어와 정착한 것이다.

청산도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드문 ‘마리방’, ‘성투집’ 등 독특한 양식의 민가와 민속이 남아 있으며 다랭이논(구들논)과 시신을 임시로 매장하는 초분(草墳)이 있다. 7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어업전진기지’로 고기잡이 배들의 파시(波市)가 장관을 이루었으나 지금 도청항은 작은 포구처럼 쓸쓸하다. 항구에는 섬마을을 다니는 정기버스, 면사무소, 농협, 한전, 학교, 공공기관, 음식점 등 구성되어 있다.

청산도 주민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소득이 높은 편이고 어업보다는 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한정된 토지와 저수지도 없어 천수답(天水畓)이다. 계단식으로 일군 다랭이논 층층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에 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수지를 만들 수도 없다. 청산도는 고등어의 파시로 한때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미역과 문어가 주된 소득원이 되고 있다. 경작지의 소유규모는 한정된 땅으로 식량의 자급자족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규모 영세농이 많다. 청산도의 구들논이 한국농업사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있듯 사람이 생명을 다하여 운명하면 시신을 바로 땅에 매장하지 않고 관을 돌축대 또는 평상(平床) 위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서 1~3년 동안 그대로 두는 초분도 이 지방의 풍속으로 내려오고 있다. 초분이라는 이름도 관을 풀이나 짚으로 덮어 만든 무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청산도에서는 초빈이라고도 하고 초장(草葬) 또는 고름장 구토라고도 한다. 주로 서·남해안의 도서지방에서 발견되는 초분은 유교식 장례가 단한번의 매장으로 끝나는 단장제(單葬制)임에 비하여 두 번의 매장 절차를 거치는 복장제(複葬制)라는 점이 특징이다. 초분의 구조는 잡석을 모아서 돌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토막을 깔고 관을 놓으며 관 위에 소나무 가지를 얹고 그 위에 볏짚이나 억새로 마름을 엮어 덮어씌운다.

그리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새끼줄로 엮어 매고 사방에 기둥을 박고 이엉으로 벽을 만들어 짐승의 접근을 막는다. 관위로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관 밑으로 오물이 잘 빠지도록 만든 구조이다. 매년 가을에 초분의 마름을 갈고 난 후에야 자기집의 지붕을 인다.

초분의 설치기간은 일정하지 않아 2~3년 지나 시신의 오물이 빠지고 탈육이 잘 되어 백골만 남을 때 이장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집안의 운세 경제적 이유로 4~5년 걸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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