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칼럼-항룡유회(亢龍有悔)
강남훈 칼럼-항룡유회(亢龍有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02 17:0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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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항룡유회(亢龍有悔)


5월이다. 신록의 계절이기도 하고, 계절의 여왕이기도 하다. 산과 들은 온통 푸르게 물들어 있다. 싱그러운 산과 들을 보면 문득 하늘로 솟아 오를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5월에는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등등. 여기다 경남도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도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바쁘다. 농사꾼은 새로운 씨를 뿌리며, 가을의 황금들판을 기다리기에 바쁘고, 도시에 사는 아들 딸 들은 시골 부모님을 찾아갈 준비에 바쁘다. 어른들은 때론 동심(童心)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한번쯤 관광버스에 올라 축제의 현장을 찾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수필가 피천득(1910~2007)은 그의 첫 수필집 <금아시문선(琴亞詩文選)>에서 5월의 이미지를 ‘방금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과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투명한 비취가락지’라고 노래했다. 시인 김영랑(1903~1950)은 <오월>이란 시에서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바람은 넘실 천(千)이랑 만(萬)이랑/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보리도 허리통이 부드럽게 드러났다/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암컷이라 쫓길 뿐/수놈이라 쫓을 뿐/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이라고 5월의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을 맞으면서 감회가 매우 깊을 것 같다. 그는 2017년 5월 9일 19대 대선에서 재수 끝에 대권(大權)을 거머쥐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는 대선에서 41.8%를 득표해 2위를 차지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24.03%)를 누르고 당선됐다. 자신들의 표현처럼 ‘촛불혁명’을 이룬 것이다. 5월 23일은 문 대통령이 저서 <운명>에서 밝힌 것처럼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인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5월 26일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제1차 미북정상회담(2018년 6월 12일)의 디딤돌이 되었고,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밑거름이 됐다. 그의 입장에선 5월의 싱그러움 만큼이나 만감(萬感)이 교차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2년을 지나 이제 집권 3년차를 맞는다. 하지만 3년차 국정운영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세 번이나 열렸고, 미북정상회담도 두 번이나 열렸지만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는 핀잔뿐이다. 줄어들지 않는 청년실업률, 자영업자의 몰락, 기업경기 악화 등 ‘먹고사는 문제’ 역시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의 합의로 선거제 공수처 검경수사권조정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웠지만 검찰총장이 수사권조정에 대해 ‘민주주의 원칙 위배’라며 정면 반기를 들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의 반발도 버거운 판에 검찰총장까지 반기를 들었으니 첩첩산중의 형국이다.

주역(周易) 건괘(乾卦)는 용(龍)의 변화를 이용해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잠룡(潛龍)은 물속에 잠겨서 힘을 기르고 있는 용을 이야기하고, 현룡(見龍)은 세상으로 나와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용이다. 비룡(飛龍)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하늘 높이 날아가는 용이고, 마지막 항룡(亢龍)은 끝까지 올라간 용으로 하늘에 오른 용을 이야기 한다. 용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지향점이요 목표지만 끝까지 다 올라간 용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다만 내려오는 일 뿐이다. 그래서 용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항룡유회(亢龍有悔, 높이 올라간 용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한다)라는 고사에 얽힌 이야기다. 흔히 우리는 대권주자를 잠룡이라 얘기하고 대권을 움켜진 자를 항룡이라 칭한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은 내려오는 길에 다 눈물을 흘렸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랬고, YS를 비롯해 문민정부 이후 탄생했던 대통령들도 눈물을 흘러야만 했다. 싱그러운 5월 항룡유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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