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긍정과 부정 사이
칼럼-긍정과 부정 사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06 18:5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긍정과 부정 사이

유대교 신비주의 가르침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의 큰 나무 앞에 서게 되는데, 그 나무 이름이 ‘슬픔의 나무’이다. 천국에 막 도착한 영혼은 자신의 슬픔을 종이에 적어서 나뭇가지에 걸고 그 나무 주변을 한 바퀴 돌게 된다. 그러면서 그 나무에 다른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슬픔의 종이를 하나하나 읽어 본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슬픔의 사연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 종이를 다 읽고 나면 천사가 물어본다고 한다. “읽어 본 사람들의 사연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선택하시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종이를 선택하면 다음 생에 그렇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어떤 영혼이든 결국에는 자신이 살았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슬픔의 나무에 적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래도 자신이 살았던 삶이 덜 슬프고 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어떤 인생이든 그 나름의 고민과 슬픔이 있기 마련이라는 교훈이다. 나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의 사연을 읽어 보니 비슷비슷한 문제들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자신의 고통과 슬픔은 아주 작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처럼 인생은 각자 나름대로 굽이굽이의 굴곡을 지니고 있다. 다만 자신의 근심만 크게 보이기 때문에 남의 슬픔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으로 알려진 루미(1207∼1273)는 이렇게 썼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여라.」삶의 길에서는 이처럼 매일매일 초대하지 않는 손님들이 불쑥 찾아온다. 그 손님들 중에는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다. 그래서 우리네 삶은 자신이 원하는 일만 찾아오지 않는다. 예기치 않는 손님들로 인해 슬픔, 절망, 이별, 좌절, 실패 등을 겪으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쁨, 희망, 만남, 용기, 성공 등의 행복한 순간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인생 희로애락과 동반해아 하는 불편한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이든 기쁨이든 이런 것들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일 때 고통이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의 오래된 전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 추장에게 질문을 한다. “할아버지, 천사와 악마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기나요?” “음…. 네가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 이긴단다.”여기서 먹이란 무엇일까? 악마에게 알맞은 먹이는 슬픔, 우울, 좌절, 눈물, 어둠 등 부정적인 생각들이며, 천사에게 알맞은 먹이는 기쁨, 웃음, 위안, 희망, 용서 등 긍정적인 생각들이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밝은 생각을 하면 천사가 이기고 어두운 생각을 하면 악마가 이긴다는 뜻이다. 즉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라는 기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시크릿』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줄 위대한 비밀을 알려 주고 있다.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이 비밀은 바로 마음의 법칙이다. 마음의 성공과 실패를 끌어들이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언젠가는 불행하고 힘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먹은 마음은 그것이 씨앗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노래를 하더라도 밝고 경쾌한 리듬을 선택해서 부르면 그 인생이 밝고 경쾌하게 흘러가게 되며, 우울하고 슬픈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철강왕으로 불리며 당대 최고 사업가였던 앤드류 카네기(1835∼1919)에게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자기 인생은 문제가 많다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를 공동묘지로 데리고 같다. “여보게, 문제없는 삶은 없다네. 문제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받아들이는 자네의 태도라네. 오직 문제없는 삶은 이 묘지에 누워 있는 사람뿐이네.” 일본의 어느 시인은 모기에게 물리자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도 모기에게 물리다니!”라고 하루의 삶을 찬탄했다. 살아있음을 찬탄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