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사라진 경리단길
아침을 열며-사라진 경리단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14 15: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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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사라진 경리단길

아들이 카페를 연지도 한 달이 넘었다. 다행히도 찾아주는 사람들 모두가 참 잘 했다고 격려해준다. “카페가 참 예쁘다”, “커피맛이 괜찮다”, “실내장식이 나쁘지 않다” 등등, 칭찬도 가지가지다. 무엇보다 재개발이 된다고 된다고 하면서 20년을 넘기고 있는 쇠락해가는 마을에 예쁜 카페를 열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가 대부분이다. 재개발 사무실의 말대로라면 내년에 당장 헐릴지도 모르는 곳에 귀한 돈을 들여서 차를 마시며 쉴 곳을 마련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진심이다.

나만 하더라도 원래 비디오가게를 하던 곳에다 십년 넘은 세월 동안 가게를 창고처럼 묵혀왔다. 하지만 재개발이 되네마네 하니 어떻게 새롭게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 장성한 아들이 재개발이 되면 되는 거고 안 면 안 되는 거고 돈 상관없이 퇴락한 동네에 작은 '문화공간'를 열자는 거였다. 물론 빚내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돈을 들였다. 아들이 없었더라면 앞으로 또 십 년 동안 재개발이 미뤄지더라도 그냥 그렇게 창고로 사용하며 먼지만 쌓여갔을 것이다.

휴일을 맞아 아들의 카페에서 아들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경리단길 이야기가 나왔다. 당연히 차값은 내가 내야지. 아들은 진작부터 경리단길이 있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이태원을 자주 갔었다.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쇠락한 이유를 아들에게 내가 물었다. “직접적인 이유는 훅훅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못하는 것이겠죠? 처음엔 지금 우리 동네처럼 한산하고 외진 곳이었는데 누군가 소박하고 예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눈길과 발길을 끄는 곳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웃으며 드나들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드나들면 돈이 드나들고 그런 냄새는 빛보다 빠르게 번지잖아요. 그래서 순식간에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가 됐어요. 그런데 건물주들은 장사가 잘 된다는 걸 또한 빛보다 빠르게 알아차리는 거에요. 결국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을 감당 못하는 순간이 온 건데 애초 사람들을 모아들였던 사람들은 이익만 쫓는 장사꾼은 아니니까 그런 구조를 못 따라가요. 가게를 늘리고 매출을 올리고 하는 과정에서 일찌거니 소외되죠. 지역특성을 형성했던 그 가게와 그 가게 주인이 하나둘 떠나고 진짜 장사꾼들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빛보다 빠르게 또 다른 마음과 눈길과 발길을 끄는 곳으로 가버리죠. 오늘날 경리단길이 빈 거리가 되는 과정인 것이겠죠?”

그리고 아들은 덧붙인다. "어떻게 보면 그런 현상은 필요해요. 마음 가는 데로 쏠리는 유행이라고 한다면 그 유행이 한 곳에서 일어나는 건 좀 그렇잖아요. 또한 가고 싶고 쉬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을 제공하는 사람들 또한 다양해야 하고 풍성해야 하는 거니까요”

유리잔에 조금 남아있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쪼옥 빨아 삼키며 나는 아들을 이윽히 바라봤다. 어느새 저렇게 장성하셨는지, 고맙고 대견하다. 아들이 필요한 거면 필요한 거다. 나는 귀여운 여인이 되고. 귀여운 여인? 안톤 체홉의 소설인데 사랑하는 대상에 의존하여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기만 행복한 사랑을 하는 맹한 여인쯤이 되지 싶은데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야 행복하든지 말든지. 화창한 봄날, 맹순이가 되기에 참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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