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혁명(革命)
아침을 열며-혁명(革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15 15:17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혁명(革命)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체 게바라는 미국의 동의 하에 볼리비아 독재정권 군대 하사관 마리오 테란에 의해 총살되었다. 테란은 6개월 후 자신의 집 4층에서 투신자살 하였다. 체(che)는 스페인어로 ‘어이’ ‘이봐’라는 뜻이다. 게바라는 스스로 이름을 이렇게 고쳤다고 전해진다. 체 게바라에게는 ‘전사 그리스도’ 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리스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활동하였던 기간 보다 더 긴 세월동안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가 깊어져 혁명 상황이 필요해지면 해질수록 그의 이름은 더욱 빛날 것이다. 체 게바라는 그를 죽인 미국인들 사이에서 더욱 이름이 빛났다. 쪼잔한 사람들은 미련한 돌비석에 자기 이름을 새겨 전하려 하지만 큰 사람들은 스스로 이름을 내지 않았음에도 나그네들의 입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대대손손 전해진다. 체 게바라를 마지막으로 촬영한 사진사 프레디는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신성(神性)을 느꼈다고 증언한다. 프레디를 만난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을 역임하셨던 진광 스님의 글에서다.

그가 성장하였던 시기의 아르헨티나는 세계 7위의 부자 나라였고 남미에서는 가장 부유하였다. 체 게바라는 로사리오의 중상류층 백인 가정 출신으로 천재적 두뇌에, 의학박사의 능력으로 시류에 따라 세속적으로 적당하게 굴러 살기만 하였더라면 그의 일평생은 편안 무탈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상대적 ‘갑질’을 해대면서 떵떵 거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와 여유가 대다수의 농민과 노동자들의 피눈물과 회생에 바탕하고 있음을 깨닫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혁명의 길로 들어선다. 가난하고 고통스런 혁명의 여정을 마치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약자를 위한 그의 피나는 투쟁은 지금도 그 이름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나약한 목소리로 변명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우리는 그럴듯한 사례로써 핑계를 댄다. ‘안 그런 사람 있나?’, ‘마, 다 그렇게 사는 것이야’. ‘세상은 자본 중심의 시장경제야’, ‘꿈꾸는 진보의 이상주의적 구호는 일할 줄 모르는 놈팽이 좌파 빨갱이들이 돈 뜯어 먹기 위해 말짱 다 지어낸 소리야’. 지독히 앙칼지고 표독스런 목소리로 자기감정의 합리화를 꾀한다. 스스로도 참 쑥스럽고 매우 서글프다.

집권세력들은 5·16 ‘군사혁명’을 ‘군사정변’으로 결국엔 기어코 ‘쿠데타’로 확정할 것이고 그렇게 세뇌교육을 시킬 것이다. 하지만 5·16에는 ‘혁명’적 요소가 분명하게 스며있다. 민주적 절차와 합법적 정당성의 측면만 보면 ‘쿠데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르디아스의 매듭에 얽매어 있다가는 ‘지독한 가난’과 ‘풍전등화의 정치적 혼란’을 끊어 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일방적으로 ‘쿠데타’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것 역시 신중하게 검토하여 보아야 할 것으로 본다. 어떻든 이후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로 시작된 경제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졌고, 지금은 인구 오천 만 명이상의 삼 만불 국가로서 세계 7번째로 자리매김 되었다. 변변한 지하자원 하나 없는 좁은 국토에서 이러한 가시적 성과는 정말 대단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5·16은 과연 불필요한 ‘쿠데타’였던가?

어떻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세력의 고통스런 투쟁과 죽음의 저항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정치적 변화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또한 동시에 의도치 않았던 빈부격차와 넘사벽의 갑질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족쇄와 멍에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정부패의 관행, 엉터리 시공(施工), 공사조직에서의 연줄 인사(人事), 패거리 집단의 패악(悖惡), 떼거리 집단의 무지막지한 목소리 등이 ‘ 세상이란 본래 그런 것이야’, ‘좋은 게 좋은 것이야’라는 식으로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보수라 말은 하지만 바람직한 보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진보는 아무 생각 없이 실없이 내 뱉은 엉터리 구호에 스스로 깜작 놀라 자화자찬하고 있다. 나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은 존재가치보다도 돈벌이에 눈이 시뻘겋게 달아 있다.
지금 우리사회엔 새로운 의식 혁명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