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패전의 마지막 날
도민칼럼-패전의 마지막 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15 15:1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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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
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패전의 마지막 날

사상 최대의 헬기 탈출 작전, 프리퀀트 윈드가 시작 되었다.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유일하게 남은 방법인 헬기 탈출이었다. 1868년 1월 31일 구정 대공세로 월맹은 월남을 공격 하였다. 호치민이 주둔하는 베트콩과 북베트남의 베트콩이 군과 합심하여 남베트남을 공격 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환점이 되었다. 구정대공세 이후 미국의 상황은 종전을 원하는 여론과 더불어 존슨 대통령 지지율 추락으로 결국 미 대통령이 존슨에서 닉슨으로 바뀌었다. 남베트남을 포기하되 패배는 인정하지 않겠다. 리처드 닉슨 사실상 지상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미국 베트남전쟁 초기 목표는 공산주의 저지였다. 호치민의 목표는 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삼국지를 읽고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며 살고 죽는 것이 정해지고, 흥하고 망하는 방법이니 상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손자병법 시계편(始計篇)을 몇 번이나 통독을 하였다. 전쟁(혹은 용병)이란 ‘속임수’이다. 전쟁의 순서는 ‘1 기계, 2 작전, 3 모공, 4 군형, 5 병세, 6 허실, 7 군쟁, 8 구변, 9 행군, 10 지형, 11 화공, 12 용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에서 최상의 승리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이다. 미리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승리가 확정된 상황을 만들고 싸우는 것이다. 전쟁은 결심했다면 전쟁의 명확한 목표와 그로 인한 이득이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전력과 나의 전력을 파악해 승기가 있는지를 먼저 보고, 직접 군사력을 전개하기 전에 계략으로 싸우지 않거나 상대방을 무력화 시켜야 하며,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된다면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를 거두는 것이 손자병법이 설파하는 핵심내용이다. 오늘날 최고의 전쟁은 드론을 이용하고 ‘핵’을 실은 미사일 싸움이지만 그 대상은 북北과 이란이다. 그 때 월남은 오랜 전쟁을 여러 번 치른 탓에 남자는 많이 사망했다고 한다.

남베트남 미군 수는 1969년 48만 명, 1970년 28만 명, 1971년 17만 5000명이었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 이후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종전 선언을 하였다. 1975년 4월 30일 공산주의 국가로 베트남 통일이 되었다. 그 여파로 인접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공산화 되고 말았다. 중국 베트남 전쟁,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분쟁에 중국이 개입하면서 분쟁이 시작 되었다. 한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최근에는 미국과 동맹 관계 또한 강화한 베트남! 신자유주의와 신 냉전의 교차로 변화하는 국제 관계를 냉정히 바라보자.

한국 현대사를 국제 정치사의 지평으로 넓힌 역작! 사이공 최후의 작전 베트남 마지막 날, 사상최대의 헬기가 떠든 날 1975년 4월 28일 헬기 탈출 작전, 프리퀀트 윈드가 시작되었다. 북베트남군의 로켓이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을 포격해 활주로가 파손됐다. 미국은 군수송기와 민항기를 이용한 민간인 수송을 중단할 할 수밖에 없었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 사이공 미군 철수 후 2년만인 1975년 봄,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제 수도 사이공 함락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베트남 마지막 날, 사상 최대의 헬기 탈출 작전, 프리퀀트 윈드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유일하게 남은 방법인 헬기 탈출 작전을 시행하기로 한다. 4월 9일 오전 11시쯤, 미군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재 사이공의 기온은 105도이며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프리권트 윈드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였다. CIA의 항공사 ‘에어 아메리카’의 헬기들이 사이공 시내의 14개 집결 장소로 향했다. 이미 방송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옥상이 임시 착륙장이라 조종사는 섬세하게 헬기를 조종해야 했다. 피난민을 태운 헬기는 탈출 작전의 거점인 DAO(국방무관실)과 미 대사관으로 향했다. 그때 남중국해에는 미 7함대 함선 40여 척이 작전 지원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철수는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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