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네
칼럼-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16 15:2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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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

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네

여인(女人)이 아름다운가! 연인(戀人)이 아름다운가! 저렇게 섬세하게 그려진 화폭(畵幅)이 아름다운가! 한 폭의 그림에서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는 대상을 만나게 되고, 그 대상이 온전히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손톱처럼 떠오른 뒤집어 놓은 초승달이 낮게 떠 있다. 야심한 밤에 한껏 차려입은 남녀가 담장 모퉁이에서 은밀히 만나고 있다. 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야릇한 교태를 부리며 수줍음이 볼에 물들었다. 저고리 깃과 끝

혜원 신윤복, 종이에 채색, 19세기 초, 간송미술관소장, 국보 제135호.
혜원 신윤복, 종이에 채색, 19세기 초, 간송미술관소장, 국보 제135호.

 

동의 보랏빛이 자줏빛 신발과 어울리고, 옥색치마와 연한 쓰개치마 맵시가 곱기도 하다. 여인의 눈은 실눈 같고 입술은 앵두 같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미인이다. 여인은 늦게 찾아온 사내가 미운지 약간 토라진 표정이다. 그윽한 눈빛을 건네는 사내는 오른손에 초롱을 들고 앞장서고 있다. 여인을 달래줄 듯 왼손은 허리춤을 뒤적인다. 선물이라도 꺼내려 하는 것일까? 도포가 가볍게 흔들리고 긴 갓끈은 멋들어지게 어깨에 걸쳤다. 여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건만 발끝은 함께 떠나고 싶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사내의 가죽신은 코와 뒤축에 따로 옥색을 댄 것이 호사스럽다. 여인은 치마를 묶어 올려 하얀 속옷이 오이씨 같은 버선 위로 드러난다. 늦은 밤 만나는 두 남녀의 애틋함이 몽롱한 달빛에 녹아 애간장을 녹인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달이 주 소재이지만 달의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다. 월식이다. 과학을 찾아내고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퍼즐 같은 그림이 월하정인이다. 달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서 떠 있는 높이가 다르다. 월하정인 속의 달은 삼경(三更)에도 처마 높이에 걸려있을 정도로 고도가 낮다. 달은 겨울보다 여름에 고도가 더 낮기 때문에 이 그림은 여름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여름과 부분 월식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1793년 8월 21일, 밝은 보름달 대신 월식 아래에서 이들의 사랑을 은밀히 비춰줬을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달빛 아래에서 두 남녀의 만남이 신비로운 운치를 만들어 낸다. 배경도 달빛마냥 뿌옇게 흐려져 있으니 섬세한 필선과 화사한 채색으로 그려진 두 연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림 월하정인은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실린 풍속화 중 하나의 작품이다. 신윤복이 이 정황을 화면 왼쪽에 풍류 넘치는 흐드러진 필치로 이렇게 적었다. “달빛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네.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화제가 한 편의 시와 같다. 화제로써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함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화제글씨도 명품이지만 화첩이 접히는 중앙 부분을 벽이 꺾이는 구도로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 일품이다. 또한 화제와 건물 벽을 반쯤 여백으로 처리한 것도 그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켜 주었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의 일은 은밀하기 마련이다. 신윤복은 그러한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그림의 대가였다. 때론 한 장의 그림이 소설 한 편보다 더 소상하다. 감상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달빛에서 멈추게 된다. 부드러운 색채와 작품 속 분위기 그리고 화면을 크게 휘돌아 달빛 깊숙이 사라지는 시선은 이 작품의 가치를 한껏 보여준다. <혜원전신첩>은 1930년 이전까지 일본 오사카 고미술상 야마나카상회의 소유였던 작품을 1934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이 거액을 주고 구입해 1970년 풍속화의 백미로 인정받아 <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이 화첩은 미술사 연구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생활사와 복식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속 연인의 모습도 아름답고, 화가 신윤복도 아름답고, 그림을 되찾아준 전형필 선생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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