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절반은 굶주려야 하는가?
세계의 절반은 굶주려야 하는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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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블로그
'책으로 담는 세상' 운영자 
당신은 알고 있는가. 지금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서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3분마다 1명씩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지금도 전 세계 인구의 약 7분의 1에 해당하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굶주림이 정말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왜 굶주려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비록 슬프지만 친절하고 명쾌한 답을 건네주는 책이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작가는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이후엔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 지글러(Jean Ziegler)다.

국제법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이자 실증적인 사회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가, 이 책을 써내려간 방식은 독특하다. 굶주림에 대한 통계적 수치들을 나열하는 보고서 대신, 아들과 대화라는 다정한 형식으로 굶주림의 실태와 그 배후 원인들을 설명해 나가는 것이다. 이는 결국엔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는 숫자들을 대신해, 굶주림이 바로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이야기란 현실감을 부여한다.

아빠, 굶주림이 자연도태거나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요.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굶주림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 텐데, 굶주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굶주림을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네, 자연이 일부러 그러는 거라구요. 말도 안 돼요!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유럽적, 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란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논리지. 자신들은 절대로 굶어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영양실조로 팔다리가 비쩍 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벵골이나 소말리아, 수단의 엄마들에게 아이들의 죽음과의 싸움이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라는 얘기를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니. 그런데도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엉터리 신화, 즉 굶주림이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고 믿고 있단다.

그럼 자연도태란 말은 정말 나쁜 말이군요! 자연도태라. 이 말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야. 그런데도 이런 표현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아빠는 여러 대학과 제네바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회의, 그리고 유엔의 책임자들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이 말을 무수히 들어보았어. 숙명적인 굶주림이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지.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그런데 아빠, 진짜로 모든 사람들이 먹기에 식량은 충분한가요.
그뿐이 아니란다.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 인구는 65억 정도 되지. 하지만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도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

그렇다면 굶주림은 세계의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아닌 거네요.

작가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굶주려야 하는 걸까를 묻는 대신 식량은 왜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분배의 문제… 하지만 작가 장 지글러는 앞으론 그렇지 않을 거라 힘주어 말한다. 세상 굶주림의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희망,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선 5초에 1명씩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지금, 시인 정제원 님의 추천글은 내 마음 한구석을 찌른다.“자기계발서나 명상서 등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나, 세상은 그리고 세계는 한가로이 덕담을 주고받고 명상에 잠기는 일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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