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의 뒷모습
떠난 이의 뒷모습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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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숙/시인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이 노래가 진실로 절창이었음을 이제사 알았다. 한 사람을 관에 넣고 관 뚜껑을 닫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야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상호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나에게 10년째 서예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흙으로 보내드려야 했다. 고인은 11년 전부터 하동읍교회서실을 무료로 운영하면서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서예와 복음을 함께 전파했다. 원장님의 헌신적인 지도 덕분에 그 문하에서 작가도 여섯명이나 나왔다.

특히나 나를 베드로처럼 생각하시고 생전에 애지중지 하시던 서예에 관한 유품들을 거의 다 넘겨주셨다. 엊그제 댁에서 가져온 그 물건들을 보자기에서 풀자니 이틀 동안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제자로서 생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회한과 좀 더 열심히 배우지 못한 후회가 막심해서다.

나이 서른일곱에 선을 본 지 2주 만에 세 번 만나보고는 결혼식장에서 손을 처음 잡아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후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한집에서 사는 생활을 하동에서 하자니 당시 서예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래서 셋째 아이 키우는 심정으로 시작했기에 처음에는 밤을 꼬박 새는 일도 잦았었다. 아이들 둘 재워놓고 밤 11시부터 연습지 100장을 쓰면 동이 트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러다가 허리가 아파서 진주 모 병원에서 CT를 두 번이나 찍으면서 “서예하다 CT찍으러 오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의사한테 혼줄이 나기도 했다.  그때 원장님은 “서예는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1000미터 오래 달리기이고 더 나아가 마라톤이다”고 하시며 소낙비보다 가랑비가 더 무섭다고 가르쳐주셨다.

덕분에 중간 중간 열정이 시들해지다가도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 갈 수가 있었다. “이왕 시작한 것 반드시 작가는 따라”며 독려하시며, “내가 이리 살아서 가르쳐 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배워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사셨다. 심지어 항암치료 중에도 우리를 서실로 불러서 대전과 소전 특강을 하셨다. 그리고 식사도 평소와 별다름 없이 같이 했었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만 해도 아이 소풍가는 날 김밥을 싸가려고 하자 “우리 다음에 김밥 싸서 송학이랑 같이 낚시 한번 가자”고 하시기에 치료가 잘되어가는 줄로만 알았다. 더욱이 그 무렵 내가 감기 몸살이 나서 선생님이 입원한지 며칠이 지나도록 찾아뵙지를 못했다. 하필 그 사이에 혼수상태가 되어 우리가 찾았을 때는 말문을 닫고 그 후 채 한 시간이 안 되어 두 눈을 감으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인은 이틀 전 이미 이를 예견하시고 “내가 말 할 수 있을 때 자식들을 다 불러라”고 하여 서울서 자식들 셋이 오고 광주 딸도 와서 모두 임종 직전에 아주 멋진 고별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도 “내가 오늘을 못 넘길 것 같으니 어디 가지 말고 옆에서 자리를 꼭 지키라”고 하시더니 그 말대로 그날 밤 8시에 돌아가셨다. 바로 그 1시간 전,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고 귀에다 대고 속삭이자 산소마스크를 벗으시며 뭐라고 하시다가 말이 안 되자 빨리 가라고 손짓만 했다. 그래서 그러다가 깨어날 줄로 알았다. 그리 쉽게 가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 소주 한 병 사서 선생님 무덤 앞에다 카네이션 한 포기를 심고 내려오자니 아무래도 내가 서실을 차려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시아버지 같기도 하고 때로는 친정아버지 같기만 했던 지난 10년의 세월을 내년 이맘때는 더 멋진 작품들을 가지고 복원을 해야겠다.

이 세상 떠날 때 나의 뒷모습은 남은 이들 가슴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자신이 가야할 때를 알고 하늘로 낚시를 떠나신 송은 김용규 원장님 잘 가시라. 거기서 색소폰 아코디언도 맘껏 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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