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업에 대하여카르마, 즉 업은 무엇이며 왜 생기는가,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업은 인과응보의 우주 법칙과 관련이 있다. 즉 모든 행동에는 그에 부합하는 또는 반대되는 반응이 있다는 뜻이다. 업은 우리의 말과 행동과 경험의 결과로 나타난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가진 뇌 속에 저장된 정보의 질과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 결국 그 정보를 좋은 일에 쓰게 되면 선업을 쌓아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연민과 측은지심, 즉 이타심으로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고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해를 끼치고 주위 세상에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것은 악업을 쌓는 것이다. 쌓인 악업은 악인을 만들고 쌓인 선업은 선인을 만든다. 종교적인 용어로 업이란 전생에 한 행동에 따라 이번 생에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처럼 우리나라의 민담, 설화, 구전소설의 교훈적 내용의 핵심은 바로 권선징악이다. 한때 이 전설의 고향은 많은 사람에게 호기심을 동반한 인간적 가르침을 전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불교철학에 따르면 어떤 영혼들은 다시 이 세상으로 환생하고 깨달은 영혼들은 환생하지 않는 채 높은 영적인 세계에 머문다고 한다. 이번 생애에 업을 씻어내고 다음 생에 다시 올 때 최대한 좋은 삶으로 오거나 더 이상 씻어낼 업이 없어서 영혼이 더 높은 영적인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 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우리조상들은 예로부터 이러한 공부, 즉 기, 단학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삼국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각종 외래종교와 문화 등이 이를 폄훼, 왜곡, 변질시켰다. 최근 생활체육 국학기공이 이제 당당히 국제대회까지 개최하는 등 우리의 기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우리가 기질을 바꾸기 힘든 이유는 자신의 신념체계 집착 에고의 욕망 등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업은 수많은 겹이 있다. 집착을 버리고 에고를 놓으면 한 겹의 업이 벗겨지지만 또 다른 업이 양파껍질처럼 나타난다. 우리는 또한 매일 말과 행동으로 업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한 겹의 업을 벗는 것이 옷을 벗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업은 자신의 관념, 감정, 습관 등의 형태로 강하게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업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한다. 쉬운 말로 “내가 나인데 왜 건드리나”이다. 그래서 누군가 이 업을 건드리면 이기심, 자존심,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며 저항하고 화를 내게 된다. 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업을 짓게 만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습관이 자신의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머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그 앎이 가슴으로 내려와 기질과 에너지가 바뀌고 온몸으로 확산되어 습관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업을 벗는 다는 것 즉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은 좋지 않는 습관을 지우는 것과 같다. 나쁜 습관은 몸을 병들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며 영혼을 어둡게 만든다. 알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당장 당신의 오른 손을 앞으로 내밀어라 그리고 하나. 둘. 셋 하면서 손을 잽싸게 뒤집어라. 말소리와 함께 손은 순식간에 위아래가 바뀔 것이다. 습관은 그렇게 단숨에 바꾸는 것이다. 꾸물거릴 필요가 없다. 업장소멸을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 목적은 바로 홍익하겠다는 자세와 태도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 측은지심으로 약한 이를 돌보는 나눔, 성의 있는 칭찬과 격려 등이 생활 속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좋은 방법들이다. 이런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자신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가슴은 늘 편안하며 온 몸은 기운으로 넘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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