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동남풍은 불 것인가?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 얽힌 얘기다. 조조(曹操)의 80만 대군이 강동을 향해 밀려갔다. 유비(劉備) 손권(孫權) 동맹군의 주유(周瑜)는 까마득한 벼랑과 벼랑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80만 대군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적의 대군을 눈앞에 둔 주유는 화공(火攻)뿐이라고 생각했다. 조조를 속여 크고 작은 선박들을 쇠사슬로 묶는 연환계(連環計)를 성공시켰지만, 문제는 한겨울 서풍과 북풍은 불어도 동풍과 남풍이 불지 않아 조조 군에게 화공을 쓸 수 없었다. ‘동남풍(東南風)이 불어야 한다.’주유는 깊은 시름에 빠진 채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이때 ‘구세주’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나타났다. 그는 ‘주공근의 병은 하늘이 내린 병이니 하늘만이 고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명은 ‘동남풍이 불고 안 불고는 결국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 도독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한 번 제단을 차리고 기도를 드려 사흘 동안 동남풍이 몰아치게 하겠다.’고 했다. 주유는 공명의 말을 듣고 남병산(南屛山)에 칠성단(七聖壇)을 쌓도록 명하였다. 공명은 목욕재계를 하고 도의(道衣)로 갈아입은 뒤 맨발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칠성단 위로 올라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새벽 무렵 정확하게 동남풍은 불었다. 화공은 시작되었다. 쇠사슬로 묶인 조조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대패하고 말았다. 이 적벽대전의 승리로 유비는 형주 서부에 세력을 얻어 천하삼분(天下三分)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총선이 10개월여 남았다. 한국당으로서는 서울과 수도권, 충청지역 등도 중요하지만 영남지역에서의 승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텃밭인 TK와 PK에서 ‘옥새파동’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한국당은 이번만은 텃밭을 지켜 2022년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황교안 대표가 민생투쟁 첫 행선지로 PK를 선택한 것이나, 대구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연 것 등은 여권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선거제 등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력하게 성토하며 대여 강경 투쟁을 지속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한국당을 겨냥해 ‘독재자의 후예’(지난 18일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라고 언급한 마당에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이 영남지역에서 예전의 텃밭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동남풍’이 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등 수도권으로 확산돼 선전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당은 이 지역에서 탄핵 전(前)의 수준으로 어느 정도 민심을 회복한 것으로 분석되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조짐들이 일고 있다. 하지만 영남지역에서 동남풍이 불어 전국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많다. 국민이 현 여당의 대안(代案)으로 한국당을 인정하기 위해선 무늬만 야당이 아니라 집권당을 견제하고 대체하려는 대안 세력이 되어야 한다. 동남풍은 그냥 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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