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칼럼-동남풍은 불 것인가?
강남훈 칼럼-동남풍은 불 것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23 17:5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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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동남풍은 불 것인가?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 얽힌 얘기다. 조조(曹操)의 80만 대군이 강동을 향해 밀려갔다. 유비(劉備) 손권(孫權) 동맹군의 주유(周瑜)는 까마득한 벼랑과 벼랑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80만 대군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적의 대군을 눈앞에 둔 주유는 화공(火攻)뿐이라고 생각했다. 조조를 속여 크고 작은 선박들을 쇠사슬로 묶는 연환계(連環計)를 성공시켰지만, 문제는 한겨울 서풍과 북풍은 불어도 동풍과 남풍이 불지 않아 조조 군에게 화공을 쓸 수 없었다. ‘동남풍(東南風)이 불어야 한다.’주유는 깊은 시름에 빠진 채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이때 ‘구세주’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나타났다. 그는 ‘주공근의 병은 하늘이 내린 병이니 하늘만이 고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명은 ‘동남풍이 불고 안 불고는 결국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 도독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한 번 제단을 차리고 기도를 드려 사흘 동안 동남풍이 몰아치게 하겠다.’고 했다. 주유는 공명의 말을 듣고 남병산(南屛山)에 칠성단(七聖壇)을 쌓도록 명하였다. 공명은 목욕재계를 하고 도의(道衣)로 갈아입은 뒤 맨발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칠성단 위로 올라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새벽 무렵 정확하게 동남풍은 불었다. 화공은 시작되었다. 쇠사슬로 묶인 조조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대패하고 말았다. 이 적벽대전의 승리로 유비는 형주 서부에 세력을 얻어 천하삼분(天下三分)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정치판에도 ‘동남풍’을 간절히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2017년 5월 9일 ‘장미대선’이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전인 그해 3월18일 ‘보수의 심장’인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선에 임하는 그의 입장에선 TK에서의 동남풍을 강력히 기대했다. 그래서 그는 대선 기간 중 TK와 PK를 집중적으로 방문, ‘동남풍 북상’에 불을 지폈다. “영남에서 동남풍이 불어야 자유한국당이 이깁니다.”며 동남풍 확산으로 보수층 결집에 주력했다. 그는 가는 곳 마다 “동남풍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동남풍은 미풍(微風)에 그쳤다. 그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그는 TK를 방문해 “동남풍이 불면 선거에서 이긴다.”고 했으나 대패를 막지 못하고 결국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20년 총선이 10개월여 남았다. 한국당으로서는 서울과 수도권, 충청지역 등도 중요하지만 영남지역에서의 승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텃밭인 TK와 PK에서 ‘옥새파동’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한국당은 이번만은 텃밭을 지켜 2022년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황교안 대표가 민생투쟁 첫 행선지로 PK를 선택한 것이나, 대구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연 것 등은 여권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선거제 등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력하게 성토하며 대여 강경 투쟁을 지속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한국당을 겨냥해 ‘독재자의 후예’(지난 18일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라고 언급한 마당에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이 영남지역에서 예전의 텃밭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동남풍’이 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등 수도권으로 확산돼 선전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당은 이 지역에서 탄핵 전(前)의 수준으로 어느 정도 민심을 회복한 것으로 분석되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조짐들이 일고 있다. 하지만 영남지역에서 동남풍이 불어 전국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많다. 국민이 현 여당의 대안(代案)으로 한국당을 인정하기 위해선 무늬만 야당이 아니라 집권당을 견제하고 대체하려는 대안 세력이 되어야 한다. 동남풍은 그냥 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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