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의 단상
참전용사의 단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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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만선/나라사랑운동
안보 보훈 강사
#1. 창밖에서 화사한 햇살속에 싱그러운 녹음이 배어있는 바람이 솔솔 불어들어 8인의 중환자가 풍겨내는 쾨쾨한 냄새들이 잠시라도 사라지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하순의 어느날, 인공호스 로 숨을 쉬는 45년 전의 전상환자가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눈빛으로 말한다. 세상이 상전벽해고 세월이 화살보다 빠르며 너무나 덧없다고…. 스물 두셋 열정의 젊은이가 세상과 단절된 병상에서 절망 고통 분노 체념의 반세기를 죽은 듯 살았으니 그가 느껴온 허망함이 오죽 했으랴, 팔 없는, 다리 없는, 눈알 빠진, 온갖 사연의 전상전우들이 뿜어내는 눈빛은 거의가 회한에 차있다. 그 놈의 전쟁 때문이라고.

타의에 의한 자신의 불행, 가족의 고통이 위국헌신이라는 단어로 얼마나 위안이 될까. 내일 모레 유월이 되면 온갖 수식어들이 난무하고 현충원 묘비 앞에 참배객들이 봄비겠지만 정치인이나 저명한 지도층들의 가식보다는 초중등 학생들 손에 들린 꽃 한 송이가 차라리 좋아라.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외과적 수술 어느 것도 면역력 초결핍의 필자에게 마땅치 않아 의료진의 고심이 깊다. 날이 갈수록 합병증이 심해지고 전이가 우려돼 색전술과 1차 약물치료 후 잠시 지친 육신을 오솔길 아카시아 향기 속에 쉬게 하며 숨을 고른다.

90년대 초 극적으로 식물인간에서 깨어났을 때를 회상해 본다. 하늘도 한번 보고 땅을 밟아보고…. 그때 죽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 야산을 네발로 기어오르던 기억을.- 4900km 피에 젖은 메콩강은 말없이 흘러가고 검정파자마 같은 위장복을 입은 베트공들이 죽이고 또 죽여도 끝없이 밀려들던 원샷 원킬의 맞짱을 떳던 전장([戰場)-그래 나는 전사였어. 18개월동안 정글에서 저승사자가 두려워 도망친 특수임무소대 솔저였지. 다시 해보는 거야. 나쁜 놈 병소 덩어리, 네 놈을 몰아낼거야!

#2.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하진 않겠지만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면 이동욋과 병원을 가고 마지막은 병원에 인접한 화장장으로 가는데, 생명이 경각에 달린 중환자 병동에선 절망과 체념속에 육종반납(화장장) 하려 곧 가야지 하면서 희망줄을 놓아버린 넋두리를 쏟아내었었다.

포탄에나 지뢰에 사지가 절단난 전우에게 “니 그리해갖고 살고 싶나? 했더니” “새키가 뭐라카노, 내 악착같이 살끼다” 했었다. 하지만 사회는 세상은 언제나 비아냥과 조소가 따라다녔고 정부지원이 거의 없던 시절의 6~70년대에는 목구멍에 거미줄을 친다고 할 만큼 생계가 버거웠고, 2000년대에 와서야 복지개념과 보훈행정 개선으로 다소 나아졌지만 한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

목숨 바치고 불구가 되면서 지켜낸 강토와 자유, 민주와 번영의 초석이 되었다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최근 진보정당의 부조리와 폭력, 제도권의 전면에 활거하는 종북론자들에게서 심히 서글픔을 느끼는 현실이다. (비례대표로서)

비밀리에 북에 가서 간첩교육을 받은 자도 있고,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 제창도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면서 국회의원이 되어 민주 대한민국을 박살내겠다는 그들만의 탐욕과 아집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은 참전용사이기 때문일까.

미사일, 핵개발에 십여년치 인민의 식량값을 쏟아붓고, 인민은 굶어죽으며 아이들은 영양실조가 되어도 연일 불바다 협박을 해대는 숨쉬기도 힘드는 북한이 그리도 좋으면 차라리 이 땅을 떠니지 분란을 왜 일으키는지….

남로당·빨치산처럼 산전정리를 해놓고 제2, 제3의 6·25를 일으키겠다는 심뽀는 아닌가! 공멸로 치달려서는 안되지만 인도적 동포애도 한계가 있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조국, 번영의 나라를 영구히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선 나와 같은 노병이 아니라도 국민된 자 모두가 나라사랑의 강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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