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느 집이든 화장실이 있다
칼럼-어느 집이든 화장실이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27 15:1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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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어느 집이든 화장실이 있다

만석꾼은 만 가지의 근심이 있고, 천석꾼은 천 가지의 고민이 있다. 소유에 비례하여 걱정이 늘어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돈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불화는 불행의 그늘이다. 물질이 가치의 전부가 되면 인생이 얼마나 빈곤하고 초라하겠는가? ‘선가습어(禪家習語)’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금가루가 비록 귀하다 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상하게 한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숲속에 앉아 있는데 농부 한 명이 지나가면서 물었다. “방금 소를 잃어 버렸는데 소를 보지 못했습니까?”부처님은 농부에게 “아니오, 우리는 당신의 소를 보지 못했소. 다른 방향으로 갔나 봅니다”라고 했다. 농부가 지나간 후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잃어버릴 것이 없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한 중년 신사가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날마다 많은 돈을 벌었으며 집은 더욱 호사스러웠다. 그는 당연히 행복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더욱 많이 고민했으며,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루는 이 무거운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구하였다. 의사는 이 사람의 고민을 다 듣고 난 후 네 봉지의 약을 지어주면서 바닷가에 혼자 나아가서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그리고 오후 세시, 오후 다섯 시에 각각의 봉지를 열어보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바닷가에 혼자 나가서 아홉 시가 되었을 때 약봉지 하나를 뜯었다. 그랬더니 그 속에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종이에는 ‘찬찬히 들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 중년 신사는 당혹스러웠지만 처방에 따라 모래밭 위에 앉아 파도치는 소리와 물새 우는 소리 그리고 바람 부는 소리를 들었다. 대자연의 소리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편안하고 고요한 느낌을 들게 했다. 그는 무엇인가에 대해 여태까지 귀를 크게 열고 찬찬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봉지에는 ‘잘 생각해볼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는 회사를 창업했을 때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았다. 가난했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과 기쁨이 충만했던 때였다. 그는 지나가버린 세월의 흔적들에 대해 다시 사색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감동시킨 수많은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니, 얼굴이 펴지고 웃음이 나왔다. 세 번째 봉지에는 ‘동기(動機)를 살펴볼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허랑하고 덧없는 목표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다. 마지막 네 번째 봉지에는 ‘겪고 있는 번뇌를 모래밭 위에 쓸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모래밭에 자기 마음속의 번뇌, 스트레스, 고민 등을 하나하나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쓰고자 했던 것들을 다 쓰기도 전에 좀 전에 적어 놓았던 많은 번뇌들이 바닷물에 씻겨서 지워지다가 마침내는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고 찬란한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네 봉지의 약을 다 복용한 중년신사는 마음 한 구석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람들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자기의 욕심에서 나온다. 우리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편안해 하지 못하고, 늘 좀 더 높고 멀고 더 나은 경지만을 추구하고자 한다. 번뇌와 불안은 이런 것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영국의 종교시인 조지 허버트(1593∼1633)는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얻을 수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는다”라고 갈파하기도 했다.‘주역(周易)’ 그리고 ‘논어(論語)’와 함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상 및 철학 체계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책 중 하나인 ‘도덕경(道德經)’을 남긴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철학자였던 노자(老子)는 ‘飄風不終朝(표풍부종조),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 즉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으며, 소나기는 하루 종일 오지 않는다고 했다. 회오리바람과 소나기는 지나칠 정도로 격렬한 자연현상을 가리킨다. 아무리 무섭고 사나운 사람일지라도 백년밖에 되지 않는 수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어느 집이든 화장실이 있다. 어떤 집안이든 냄새나고 골치 아픈 일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하늘은 이름 없는 꽃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폴레옹은 “내 키는 땅에서 재면 작지만 하늘에서 재면 누구보다 크다”라고 했다. 세상사 어떤 기준에 대입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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