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쌍둥이 정자나무
기고-쌍둥이 정자나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28 15:0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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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쌍둥이 정자나무

우리 마을 앞 시냇가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쌍둥이 정자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우뚝 서서 어린 시절 그때나 지금이나 말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백년은 넘었을 것 같다. 사시사철 흐르는 냇물 덕분인지 나무가 유난히 생동감이 넘치고 자연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뉴월이면 잎이 무성하여 무더운 여름날에 요즘 에어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 주었고 지금도 동네 주민들에게는 천국과 다름없는 시원한 쉼터로 대화의 장, 만남의 장소로 남아있다. 쌍둥이 정자나무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그 물속에는 각종 물고기 들이 자라고 있다. 망태, 등물이, 미꾸라지, 꼬리를 흔들며 한가로이 먹이를 찾아다닌다고 빨래터에는 아낙네들의 방망이 소리 토닥토닥 흥겹게 들려왔다. 자상하고 부지런한 어르신들은 소들이 더울 까봐 냇가로 몰고 나와 정자 나무뿌리에 소고삐를 매어놓으면 물속에 네발을 담근 소들이 행복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심술궂은 파리 떼가 윙윙거리며 소들을 괴롭히고 소들은 목과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되었지 그러면 목에 달린 워낭이 댕그랑 댕그랑 그 소리가 어찌나 청아하게 들러오는지 지금도 귓전에 울려 퍼진다. 한여름에 정자나무 가지에는 매미울음소리 풀밭에 곤충들도 뒤질세라 제각기 아름다운 소리로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정자나무아래에 쉬고 있는 주민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어찌나 정겹게 들려오는지 이 모든 소리들이 앙상블이 되어 아름다운 연주회를 방불케 한다. 시원한 정자 그늘 아래서 세상의 시국(時局) 얘기며 동네의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른들은 새끼를 꼬기도 하고 바둑과 장기를 두면서 장군이야 멍군이야 하며 시끌벅적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잠시나마 일손을 놓고 웃으시며 여유를 부리시던 그 때가 선하다.

그 뿐인가? 남자 아이들은 딱지치기 여자아이 들은 공기(깔래 받기)도 하고 간혹 공부 잘하는 오빠들은 책을 보기도 하며 정자 그늘을 즐겼다.
인정 많고 자상하신 어르신들은 짚으로 팔뚝처럼 굵은 새끼를 꼬아 정자나무 가지에 그네 줄을 매달아 주셨다. 그러면 동네 여자아이들은 어르신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외 그네 쌍그네를 뛰기도 한다. 그네 발판에는 모심을 때 쓰는 못줄을 달아서 누가 더 멀리 뛰나 시합도 했었다. 시냇물 위에서 검은색 물잠자리 와 고추잠자리도 등달아 신이 나는지 그네 줄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가을이 되면 정자나무 잎은 단풍이 어찌나 아름답게 울긋불긋 곱게 물이 들었는지 마치 물감으로 색칠해 놓은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늦가을이 되어 단풍으로 떨어진 고운 낙엽은 차마 밟지 못할 정도로 낭만적이다.

그렇게 구슬프게 우는 매미며 곤충들은 어디로 갔는지? 혹여 내년을 기약하며 자기 둥지로 갔으면 다행인데 아무래도 생을 마감하고 자연으로 돌아갔겠지?

추위가 다가와도 정자나무 아래는 그냥 휑하니 비워두지 않았다. 넓은 공간을 이용하여 볏단을 크게 모아 짚동을 만들어 총총히 세워두면 어린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놀이터가 생겼다.

겨울 방학이 되면 깡통 차기 숨바꼭질을 하면 짚동사이 숨기에는 너무나 좋은 공간이 되었고 짚동 사이에 꼭꼭 숨어 있노라면 따뜻한 온기에 어느새 잠이 들어 얼마나 잤을까?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와 보니 작은 산골 마을에는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이 온 대지를 덮어 있었다. 살금살금 집에 들어오니 식구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며 크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겨울에는 정자나무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까치들이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었다. 얼마나 튼튼한지 비가 아무리 와도 혹독한 강풍이 불어와도 부서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우리 동네 정자나무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 지금도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정자나무 아래에 아담한 오각 정 정자를 지어 마을 사람 모두의 쉼터가 되어 있다. 우리 어린 시절 동네 아낙네 들은 정자나무 그늘에는 얼씬도 못했는데 지금은 정자 마루는 아낙네들의 차지가 되었고 정작 남자들은 아래 정자 그늘에 누워서 쉬며 더위를 보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인구가 많이 줄어 온 동민이 전부 나와도 정자나무 아래는 한산하다. 한 가족처럼 모여앉아 동 회의도 하고 오순도순 정답게 이야기도 나누며 동네 아낙네들은 맛난 감자도 삶아오는 사람, 파전과 전구지 부침개와 각종 음식도 만들어 먹기도 하고 가끔은 중화 요리도 시켜서 정답게 드시는 모양이다.

우리 동네 지킴이 정자나무 아래 있으면 온 동네 소식을 알게 된다. 또 5일 장날이 되면 윗마을 사람들도 더위를 시킬 겸 정자나무 아래에서 같은 동네 사람들과 다름없이 함께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우다 서산에 해가 기울 즈음 발길을 옮긴다.

간혹 길 가던 길손들도 시원한 그늘 밑에서 앉아서 쉬고 있으면 인정 많은 마을 사람들은 차가운 냉수나 음료수 과일이며 음식이 있는 대로 대접을 하면 손님들은 덕담 한 말씀을 하신다.

“여기 정자 그늘 아래가 정말 지상 낙원(地上樂園)입니다”

하시며 행복한 모습으로 자리를 떠나시고 남은 동네 주민들도 정성을 다하여 인정을 베푸는 모습들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객지에서 살다가 고향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방문 하는 사람들도 빈손으로 오지 않고 정자 밑에 마을 주민들을 생각해서 성심 성의껏 준비해온 간식들을 정답게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습들이 미풍양속(美風 良俗)이 아닌가 싶다. 옛날 어르신들이 어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좋은 나무를 심어 우리 마을 대대손손 소중한 보물을 선사하셨는지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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