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7) ‘시야’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7) ‘시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5.30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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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7) ‘시야’


‘넓게 보기’ 혹은 ‘멀리 보기’ 혹은 ‘크게 보기’를 생각해본다. 오늘 나의 시선은 ‘시야’라는 것을 향하고 있다.

휴식시간에 ‘텅쉰신원’(腾讯新闻)을 보다가 ‘국내최대대학’이라는 기사제목에 눈길이 갔다. 아마도 평생 대학에서 살아왔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게다. 물론 여기서 ‘국내’란 중국을 말한다. 동북임업대학이 최대라고 소개했다. ‘칭화’(청화대)나 ‘베이다’(북경대)만큼 유명하진 않아도 엄청 좋은 대학이라고 칭찬도 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고궁(자금성)의 무려 460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숫자의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곧잘 여의도의 몇배... 하는 표현을 쓰지만 여기서는 고궁의 몇배...라고 하는 모양이다. 자금성이 여의도만큼은 아니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그것만 해도 아득한 넓이였다. 그런데 대학 하나가 그 4배도 아니고 460배라니! 입이 벌어진다. 지금 내가 사는 집 바로 근처에 칭화대가 있어 가끔씩 들어가 산책을 즐기는데 거기만 해도 넓이가 장난이 아니다. 북경대도 그렇다. 유명한 만리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다녀본 천단공원, 원명원, 이화원 등도 한없이 넓어 보였다. 도로도 널찍널찍하다. 이들의 스케일이 남다름을 느끼게 한다. ‘뭐, 대륙이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 아침 뉴스엔 ‘남북 기온차 무려 60도!’라는 게 떴다. 순간 남북한 문제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냥 날씨얘기였다. 충칭은 30도, 흑룡강은 –28도란다. 참 넓긴 넓구나.. 실감했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야도 그렇다. 폭이 넓다. 시진핑 주석의 유럽 방문을 돌아보는 기사도 읽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일대일로 관련기사도 읽었다. 그는 이른바 G2의 지도자답게 ‘세계’를 그 시야에 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 잘은 모르지만 여기서 몇십년을 산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의 관료, 기업인, 학자들은 적어도 몇십년 후를 내다보고 사안을 생각한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똑 같은 사람의 눈이건만, 그 바라보는 시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같은 화면에서 동시에 보게 되는 ‘저쪽’ 한국의 뉴스들이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시야는 거의 대부분 그저 ‘눈앞’이다. 그것도 내 눈, 우리 패거리의 눈, 나의/우리의 이익이 그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우리 편이 아닌 ‘니들’의 흠집만이 그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바로 옆에 붙은 이들과 국제무대에서 경쟁을 하겠는가. 내가 10년 세월을 살았던 일본만 하더라도 뉴스의 상당부분이 국제뉴스였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이 국내뉴스다. 그 대부분도 칙칙한 소식들뿐이다. 이래서야 젊은이들이 여기서 결혼하고 애 낳고 기르며 살고 싶겠는가. 땅덩어리야 애당초 좁으니 그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그 때문에 시야까지 당연히 좁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비슷하게 좁은 섬나라지만 일본도 세계를 바라본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만 하더라도 그 시야는 전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와 거의 똑같은 이탈리아도 전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발을 넓혔었다. 시야는 온전히 사람의 문제다. 우리도 시야를 조금은 달리 설정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몰락하고 말았지만 한때 많은 젊은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이라는 마인드는 우리에게도 그것이 가능함을 알려준다. 정말이지 그의 말대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제발 우리의 좁은 틀을 깨자. 이곳 북경에서 우연히 인연이 닿게 된 ‘북경한인실업인연대’(BKBN)의 회원들은 이미 그런 좁은 틀을 넘어선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전 중국이, 아니 전 세계가 그들의 삶의 무대였다. 한동안 안 보인다 하는 분들은 각각 ‘미국출장, 일본출장, 유럽출장, 아프리카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들의 삶은 치열한 ‘실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기업인들이 사실상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견인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여기까지 끌어온 건 기업인이나 문화인이지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니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싶다. 부디 큰 눈을 떠라. 넓게 둘러보고 높이 쳐다보고 멀리 내다봐라. 좁고 척박한 이스라엘 땅에 살았지만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넓게, 가장 깊이 바라본, 아니 창세에서 영원까지 바라본 예수 그리스도 같은 젊은이도 있었다는 것을 참고해도 좋다. 사는 땅의 넓이와 사물-세계-삶을 바라보는 시야의 넓이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안식년으로 중국에 간다니 더러는 나더러 늦은 나이에 사서 고생이라고 웃었지만, 나는 지금 조금이라도 시야를 넓혀보고자 지금 이곳 대륙의 심장 북경에 와 있다. 세상이 조금은 더 넓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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