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칼럼-이형기 문학상 부활
강남훈 칼럼-이형기 문학상 부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02 15:2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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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이형기 문학상 부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 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형기 시인(1933.1.6.~2005.2.2.)의 작품 ‘낙화(落花)’다. 이 시는 이형기 시인이 1963년 출간한 첫 시집 <적막강산>에 수록된 작품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는 자연의 이치를 인간의 삶과 연결해 이별의 슬픔이 영혼의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1957년에 창작된 이 시는 20대 중반의 청년시인 이형기의 문학적 재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이형기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농림학교를 거쳐 195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연합신문> <동양통신> <서울신문> 기자를 거쳐 <대한일보>에서 정치부장, 문화부장을 지냈다. 또 <국제신문>에서 논설위원과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계 출신이다. 이후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등을 거쳐 부산산업대학교와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이형기 시인은 고교 재학 시절인 1950년 <문예>에 ‘비오는 날’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웠다. 초기에는 삶과 인생을 긍정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서정시를 쓰고, 후기에는 허무에 기초한 관념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과 격정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62년 <현대문학>에 평론 ‘상식적 문학론’을 연재하면서 시뿐만 아니라 평론 분야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대한민국 문학상(1990)을 수상하는 등 한국문단에 큰 족적(足跡)을 남겼다.

이형기 시인이 타계(他界)하자 진주시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는 2006년 ‘이형기 문학상’을 제정했다. 진주에서 출생하고,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2006년부터 해마다 수상자를 선정해 2000만원의 상금을 지급했다. 이형기문학상은 2013년(제8회)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매년 4~6월에 수상자를 발표하고 이형기문학제를 개최하면서 시상식을 가졌다.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8명이 이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이형기 문학상은 중단됐다. 이유는 문인들 간의 갈등이었다. 이형기 시인의 전집(全集) 발간문제를 놓고 진주지역 문인들과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사사> 등 서울지역 문인들 간의 불협화음이 계속됐다. 진주지역 문인들은 “진주 출신인 이형기 시인의 전집 발간은 지역 고유의 사업으로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서울지역 문인들은 “저작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함께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 자존심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이에 진주시는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중단’ 결정을 내려 이형기문학제는 2014년부터 5년 동안 열리지 못했다.

다행히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시사사>가 2017년 자체적으로 전집을 발간하는 바람에 갈등의 불씨는 자연적으로 해소됐고, 진주 문인들의 “이형기문학제를 다시 열자”는 건의를 진주시가 받아들여 5년 만에 부활됐다. 하지만 그간의 얘기를 들어보면, 왠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진주를 대표하는 걸출한 시인의 문학상을 문인들 간의 갈등을 이유로 중단까지 한 것은 너무 옹졸한 결정이었다. 진주시장의 큰 역할중 하나는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당시 진주시가 갈등해결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그 결정이 정말 옳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이형기 시인의 시적 정신과 문학적 업적은 진주 시민의 자랑이자 보고(寶庫)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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