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시인 윤동주를 지키기 위하여
시론-시인 윤동주를 지키기 위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02 13: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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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시인 윤동주를 지키기 위하여


지난 5월 18일부터 이틀간, 필자는 박경리 토지학회의 봄학술대회를 위해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다녀왔다. 광양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유고보존 정병욱가옥’이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 그곳은 윤동주와 연희전문을 함께 다닌 후배 정병욱 교수가 윤동주의 친필 유고를 어렵게 보존했다가, 광복 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간행하면서 시인 윤동주를 널리 알린 전설 같은 사실(史實)의 현장이었다. ‘서시’ 못지않게 우리에게 익숙한 ‘별 헤는 밤’의 말미 네 줄,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는 정병욱의 충고에 따라 시인이 덧붙인 것이었다.

이 가옥 앞 표지판에는 윤동주의 출생지인 북간도 룡정현 명동촌에서 광양 망덕포구에 이르는 길을 백두대간 줄기 따라 연결해놓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랬다. 삼천리강토를 가로질러 이 문약하고 서정적인, 그러나 치열한 문학정신을 가졌던 시인은 짧지만 확고한 생애의 흔적을 남긴 터였다. 이 늦은 봄의 문학 여행길에서 윤동주를 만나니, 얼마 전 룡정 명동촌에 있는 시인의 생가를 다녀온 기억이 새로웠다. 룡정은 일송정과 해란강, 용두레 우물터와 명동학교 그리고 은진학교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조선민족 항일 저항운동의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중국 정부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를 룡정이 아닌 연길로 유도한 것은, 이런 역사적 의미와 관계가 있어 보였다.

윤동주 생가는 5칸 일자형 옛 가옥의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경내에 부대시설과 마당을 즐비하게 채운 시비(詩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의 직원은 조선족이 아닌 한족이었다. 그로부터 백 미터 이내의 거리에 시인의 열혈 동역자 송몽규 생가도 복원되어 있었는데, 거기는 아무래도 규모가 좀 협소했다. 이들이 함께 다닌 명동학교 또한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이 학교는 시인의 외삼촌 김약연 의사(義士)가 세운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봄비가 시야를 가로막기는 했지만, 그 학술 세미나와 문학여행 주관자였던 김사인 시인은 학교 전방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 순하고 아름다운 하늘과 산과 수풀, 윤동주의 순정한 감성은 이 순후한 자연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의 자취와 문화의 향기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윤동주를 두고 연희전문을 다니고 항일 저항시를 썼으며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한 우리의 시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의 시각으로 보면 윤동주가 당연히 조선족 시인이고,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으로 말하면 중국 소수민족 시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도외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삼엄한 인식의 차이가 양자 가운데, 아니면 삼자 가운데 위태롭게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화와 민족어의 개념으로 보면 윤동주는 당연히 우리의 시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토와 국적 개념으로 보면 중국 조선족과 정부의 인식을 아무 전제조건 없이 틀렸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화의 영역은 현실적인 대립을 축소하고 그 본질을 함께 향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옳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이에 대한 쟁투 보다는 상호 협력을 통해 문화유산을 미래의 동력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가 강국이어야 하고, 강국은 국론이 통합되어 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저력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오늘날과 같이 지리멸렬한 국가 지도자들의 행태는 그래서 참으로 걱정이다. 이렇게 해서는 민족사의 소중한 시인 한 사람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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