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성숙한 사회를 꿈꾸며
아침을 열며-성숙한 사회를 꿈꾸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03 15: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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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성숙한 사회를 꿈꾸며

‘다뉴브(도나우)강의 잔물결(작곡, 이바노비치)’은 윤심덕이 부른 ‘사(죽음)의 찬미’란 노래로 변하여 일제 강압기에 조선 팔도를 을씨년스럽게 적셨다. 그리고 우리 시간 2019년 5월 30일 새벽 4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뉴브, 작곡, 슈트라우스 2세)’는 빗줄기 흙탕물로 혼탁하고 잔인한 다뉴브가 되어 매우 슬프게도 한국인 관광객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헝가리의 다뉴브 강은 우리에게 비통한 강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 슬픔은 아직도 말끔하게 가셔지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이다.

아름다운 다뉴브 강변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다. 이 관광명소를 찾아 즐기고 기뻐하고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가지는 보편적인 마음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리고 정치는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갖도록 조장하고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에 시장경제의 원리와 수요공급의 원리가 적의하게 작용할 수 있음도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당위적 과정에 탐욕, 무질서, 속임, 부풀림, 가치 왜곡 등의 부정적 요소들이 시장통제의 한계를 넘어버린 데에 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인 철지난 회고(回顧)지만 이 슬픈 사건에도 어김없이 야만적 탐욕이 스멀거리고 있다.

한강 폭의 1/3에 불과한 장소에 상호 조정할 수 있는 경계를 초과한 무수한 관광선들이 저마다의 수익획득을 위하여 무질서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도로 표시나 신호등도 없고 교통법규도 없으며 교통 경찰관도 없는 길을 무수한 자동차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하여 제각기의 속도로 무질서하게 달리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관광 유인 효과가 큰 만큼 자본 논리에 의한 대형 호화 선박도 대기업들의 막강한 힘으로 마구잡이로 진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작은 선박들과 대형선박들이 저마다의 좋은 장소를 점유하기 위하여 폭이 좁은 강위를 무질서하게 내리달리니 충돌 사고는 필연적으로 예견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우리 관광객이 탄 선박의 건조가 70여년이 넘은 것이라 하니 여러 면에서 애석한 점들이 매우 많다.

돌이켜 보니 이 사고는 지난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발생하였던 끔찍한 사고의 복사판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탐욕과 무사안일, 방심과 이기적 욕망에 의한 파멸의 상징이기도 한다. 이는 또한 이러한 저열한 욕망을 제어하거나 세련되게 가다듬지 못하면, 이 보다 더욱 처참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생한 예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저마다 좋은 것들을 탐하며 이를 차지하기 위하여 상대를 헐뜯고 공격하고 잡아 넘어뜨리는 짓거리들을 아주 당연한 자연의 질서인양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짓거리들은 더욱 심하다. 갈라진 국민의 민심을 한 곳으로 추서려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온 힘을 합하여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갈라진 민심을 더욱 부추기고, 욕하고 힐난하고 분리하고 갈갈 찢어 놓는 짓거리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아이러니가 횡행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섣부른 혀 놀림이 다뉴브 관광선박들의 뒤엉킴과 사고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 전체 국민과 나라의 미래는 안중이나 생각에도 없고 스스로의 비틀린 자기 말에 스스로 도취되고, 또 매료되어 있는 일부 지지자들의 환호에 흠뻑 빠져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우리 국민들의 정신적 수준이 아주 높아 정치꾼들의 하는 짓거리들을 능히 삼류 코미디로 가볍게 즐기며 시청하고 있다 손 치더라도 이런 빈도가 너무 심하면 국민도 식상하고 통합의 동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싱그러운 생기가 고갈되어 역사의 전환기에서 제대로 기력을 펼 칠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기에 매우 우려스럽다.

이제 우리는 가고 있는 발길을 잠시 멈춰 발걸음을 찬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저주와 증오의 악다구니를 내뱉기 전에 입을 다물고 성찰하는 멈춤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발 앞에 쓰러진 사람을 밟아 버릴 것이 아니라 보듬어 일으켜 세워야 한다. 눈앞을 가로 막은 태산 같은 허상(虛像)에 스스로 놀라 까무러치며 무작정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공에 칼질 할 것이 아니라 실체를 찬찬히 규명하여 올바르게 말을 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 진보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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