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 茶문화 지키는데 남은 여생 바치겠다
우리 고유 茶문화 지키는데 남은 여생 바치겠다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2.05.24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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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화원 차인회 김경자 회장

▲ 김경자 여사는 지난 30여년간 차와 함께 살아왔고 진주성 지킴이 회장으로서 우리 문화재 가꾸기에 헌신하고 있다.  차가 가진 순수함으로 우리 문화를 가꾸고 지켜나가는데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진주 논개제, 남강유등축제, 개천예술제 등 진주를 대표하는 축제는 항상 헌다례 의식으로 행사를 시작한다. 헌다례 행사의 주인공은 차를 정성껏 잘 달여낼 수 있는 팽주가 맡는다. 지난 20여년간 진주를 대표하는 축제에서 팽주를 맡아온 김경자 여사. 그녀는 진주문화원 다도강의, 차인회 활동, 수많은 축제에서 팽주로 활약하였을 정도로 차를 사랑하고 차가 가진 매력에 빠져 있다.
하지만 30여년간 차를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는 아직도 차가 가진 진정한 깊이를 알기에는 멀었다고 말한다. “차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어린 녹차잎으로 만든것이다”라고 말하는 김 여사는 지금도 우리의 차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고장의 문화재를 찾아 지키고자 결성된 ‘(사)진주성 지킴이’의 회장직을 6년간 맡아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 우리의 차를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문화재를 지켜나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순수하지만 큰 꿈을 가진 김경자 여사와의 일문일답. 
 
-차(茶)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고향이 하동 화개다. 화개는 차(茶)의 시배지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어릴때부터 차와 접할 기회가 많았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린 시절 감기가 들면 할머니께서 작설차를 만들어 주셨다. 할머니나 동네 어른들은 잭살이라고 불렀는데 작설 잎을 약탕기에 넣고 삶아 벌꿀을 타서 먹으면 감기에 특효약이었던 기억이 있다. 작설은 삶으면 탄닌이 있어서 쓴맛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할머니는 꿀을 타 주셨던 것 같은데 그게 감기를 낫게 하는데 더 도움이 된것 같다.
-화개의 차 역사에 대해 한 말씀
▲옛 문헌을 살펴보면 화개 차의 역사와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고 했는데 이를 미루어 선덕여왕 때 이미 그전부터 차를 마셔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렴공추원비에는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사오십리에 뻗어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넓은 차밭은 없다…다경에 이르기를 차나무는 바위틈에서 자란 것이 으뜸인데 화개동 차밭은 모두 골짜기와 바위틈이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고려시대 역사에서도 화개차가 등장하는데 이규보가 화개차 공납으로 인해 백성의 고통 등에 관해 “화개에서 차 따던 일 논하면, 관에서 독려함에 장정과 노약자 구별없었네. 험준한 산중에서 간신히 따 모아 멀고 먼 서울로 등짐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고혈과 살점이니, 수많은 피땀으로 간신히 이르렀네...”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당시 화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 산지로 알려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하연은 판서 민의생이 중국으로 사행을 떠날 때 화개차로써 전별하면서 “향기로운 차는 금옥같이 귀중하니, 마음 깊이 감사하며 이로써 전별한다오. 듣자니 화개곡은 맑기가 양이산과 같다고 하오”라는 시를 지어주기도 했으며 중국에서도 화개차를 주제로 시로 읊어 화개차의 우수성을 노래 만들었을 정도로 화개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차 시배지로 인정받고 있다.

▲ 김경자 회장은 진주 논개제, 개천예술제, 남강 유등축제, 차인의 날 등에서 헌다례의식의 주인공인 팽주를 맡아오고 있다.

-얼마전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성황리에 끝났는데 뿌듯하시겠다
▲고향에서 열린 축제가 성황리에 끝나 뿌듯하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하동 대렴공 헌다례가 시초다. 당시 제가 활동하고 있던 진주차인회에서 헌다례를 주관했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에 있던 대렴공 비석을 하동 차 시배지에 있는 것이 훨씬 의미있다는 생각에서 비석을 옮기는 일을 추진해 이뤘다. 하지만 진주차인회가 주축이 돼 헌다례를 진행하다보니 하동군이 주최가 돼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의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군에 대렴공 헌다례행사를 주관하는 것을 추천했고 군이 이를 받아들여 이어진것이 오늘날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됐다.   
 -차 공부를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인가
▲결혼 후 진주에서 살다가 비봉산을 오른 적이 있다. 거기서 우연히 고등학교 은사님이셨던 허점혜 선생님을 만났다. 진주여고 재학 3년동안 줄곧 우등상을 받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이뻐해 주셨다. 선생님이 저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우셨는지 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저도 선생님을 존경하던터라 선생님 댁에 가서 그간의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때 허 선생님이 차를 내 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어떻게 차를 끓이셨는지 물어봤는데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이 차에 관해 설명해주시는 것을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차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그때부터 차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제가 39살이 되던해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차 발전에 뜻을 모아 차회를 결성해 활동하게 됐다. 또한 허 선생님은 당시 진주교대 교수로 계셨는데 여성으로는 최초로 진주문화원 여성연구소장으로 추대됐다. 선생님은 문화원에서 다도부를 개설하시고 저희들과 함께 차 문화를 알리는데 힘쓰셨다.
-차와 관련돼 왕성한 활동을 펼친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
▲진주차인회가 결성된 첫해부터 헌다례 팽주를 맡았다. 팽주는 차를 달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차의 깊은 맛을 낼 수 있어야 하기에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 자리다. 그래서 팽주를 헌다례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개천예술제나 1981년부터 촉석루에서 매해 개최해오고 있는 ‘차의 날’, 논개제 등에도 팽주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00년도 차인연합회에서 설립한 다도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후 다도 강의도 많이 했다. 진주에서는 처음으로 2000년부터 진주문화원에서 보이차 강의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얼마전 작고한 아인 박종한 선생과 진주차인화 회장을 지내셨던 최문석 이사장과도 자주  모임을 갖고 차에 대해 많은 교류를 가졌었다.
-차의 산 증인이신것 같다. 차의 좋은점은
▲차는 심성이 부드러워지고 눈과 머리를 맑게하고 귀도 밝게하는 효능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갈증해소와 피로 회복에도 탁월하다.
벌써 차와 함께 한지가 30년여년이 흘렀다. 차와 함께 하다보면 차와 동화돼 차가 가진 차분함이 자연스레 몸에 베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어렵다. 차는 알아 갈수록 어렵고 한없이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차가 있나
△요즘 차 종류가 다양하다. 녹차, 보이차, 대추차, 유자차 등 예전보다 종류가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차라함은 원래 녹차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추차, 유자차 등은 대용차로 차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 녹차의 여린잎을 따서 좋은 물을 길러다 시간·온도를 잘 맞추어 정성스레 달여내야 하는 것이 차이다. 정성스레 차를 달이는 것 이것이 바로 다도다. 차인은 순수해야된다. 요즘 차인회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만큼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부 차인들 중 호화스럽고 화려하게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차와 관련된 활동을 상업적으로 하는 분도 있다. 차를 판매하는 것은 상업적인 것이 당연하지만 차를 달이는 사람은 순수함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않된다. 차인들은 차에서만 그치지 말고 차의 본질을 깨닭고 차와 동화될 수 있는 차도를 깨우치는 것이 최고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요즘 중국차가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앞서 말한 화개 차의 역사나 차의 의미에서 알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차란 녹차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중국 보이차가 각광받다가 언론에서 보이차의 생산과정이나 유통과정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차는 생산과정이나 유통과정이 매우 청결하지 못하다. 중국은 여러가지 분야에서 우리나라 문화를 빼앗아가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것 같다. 아리랑, 김치 등 우리 고유의 문화를 유네스코에 자국 문화로 등록하고자 온갖 수작을 부리고 있다. 차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이 절실하다고 본다. 그래서 몇 년전부터 진주성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 진주성 지킴이 회원들은 우리 문화를 알리고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천전초교와 협약을 체결하고 어린이 문화 지킴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진주성 지킴이는 어떤일을 하는 곳인가
▲이름 그대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 가꾸고 지키는 일을 하는 자발적인 봉사단체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단체다.
2005년 지킴이 기본 교육을 받고 2006년 경남에서는 최초로 진주에서 단체가 결성돼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의 활동으로는 청곡사, 향교, 진주성 등 진주의 문화재 주변 정화활동이나 문화재 가꾸기 활동 등이 있다. 또한 지난 2008년 태안반도 기름유출 시 정화활동을 펼쳤고 타 지역의 문화재 지킴이들과 협력해 정화활동을 펼치는 등 전국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는 단체가 처음 결성 된 후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아 오고 있는데 지난 2010년에는 문화재청이 주관한 한문화재 한지킴이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문화재청 등록 단체면 정부 지원금도 받겠다
▲아니다. 2006년에 문화재청에 등록된 뒤 지난해까지는 지원금은 나오지 않았다. 원래 단체가 자발적 봉사활동의 개념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회원들의 봉사정신으로 이제껏 유지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회원들이 오랫동안 한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펼친 결과 최근 최근 문화재청이 주관한 ‘12년 문화재 지킴이 활동우수사업’에 선정돼 올해부터는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됐다. 지원금을 받은만큼 올해에는 더 많은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
▲올해는 활동명을 ‘The 채움’으로 정하고 진주지역 문화재 보호에 나설계획이다. ‘The 채움’이란 문화재 조사 및 교육을 통한 ‘슬기채움’, 어린이지킴이단 운영을 통한 ‘사랑채움’, 문화재 및 주변 정화 활동을 통한 ‘봉사채움’, 문화재 모니터링을 통한 ‘행복채움’, 문화재 소개 및 홍보를 통한 ‘희망채움’을 뜻하는 것으로 이런 활동들을 통해 문화재 애호.보존 및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는데 목적을 두고 운영할 것이다.
지난 4월 '사랑채움'의 일환으로 천전초와 협약을 체결하고 어린이 문화 지킴이 활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천전초 어린이 지킴이들에게 우리 문화재 교육을 실시하고 직접 문화재가 있는 곳을 방문해 정화활동을 펼치는 등 지역 학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한 학생은 김시민 장군 동상을 이순신 장군 동상이라고 잘못알고 있는 경우도 있더라. 미래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난 21일 실시한 월례회 때는 효자리 3층석탑, 진주평거동 고려고분군 등을 돌며 문화재 정화 및 모니터링·답사 활동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은
▲제가 차 관련 일이나 진주성 지킴이 활동을 하는 목적은 하나다.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 문화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고 있다. 차가 가진 순수함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를 가꾸고 지켜나가는데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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