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게 된 이유는?
도민칼럼-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게 된 이유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10 15:1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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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
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게 된 이유는?

미국의 세계패권과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승리가 목표 대상이 된 것이 베트남 전쟁이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밀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북한, 중국, 북베트남, 소련이 서로가 공산국가로 힘을 합하는 것에 상대하기 위하여 남한, 일본, 타이완, 남베트남도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전술적 목표를 세웠다.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가 공산화 된다고 생각한 미국이었다. 그것은 곧 동남아시아 필리핀, 괌, 사이판, 인도네시아 지대에서 섬으로만 이뤄진 방어선을 형성하여 공산주의 확산은 막아야하기 때문에 즉시 남베트남 지원 강화에 나섰다. 케네디 대통령 때 남베트남 주둔 미 군사요원 수는 1960년-685명, 1961년-3164명, 1963년-1만 6263명으로 베트남 전쟁이 확산됐다. 남베트남 병력은 24만 명에서 51만 명으로 상승했다. 문제는 남베트남의 내부 상황이었다. 불교를 탄압하고 남베트남 정권에 분신자살로 저항한 틱꽝득 스님 그로 인해 불교도와 대학생들이 4개 도시에서 데모하고 한편으로 남베트남 군부에서는 쿠데타 음모가 진행됐다. 통킹만 사건(1964. 8.2) 미 함대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가했다.

그러나 1972년 미국이 공격해 유발된 것이라고 폭로했다. 1965년 미군 18만 4천여 명이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미군 총 54만 명 참전, 대한민국 국군도 베트남전 참전 8년간 총 31만 2835명을 파병했다. 소련, 중국, 북한은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1965년에서 1968년까지 약 30만 명의 중국인이 북베트남을 지원하면서 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1968년 1월 31일 구정 대공세로 월맹은 공격을 했다. 호치민이 주둔하는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 공격으로 베트남 전쟁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환점이 되었다. 구정대공세 이후 미국의 상황은 종전을 원하는 여론과 더불어 존슨 대통령 지지율 추락으로 결국 미 대통령이 존슨에서 닉슨으로 바뀌었다. 남베트남을 포기하되 패배는 인정하지 않겠다. 리처드 닉슨 사실상 지상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미국 베트남전쟁 초기 목표는 공산주의 저지였다. 남베트남 미군 수는 1969년-48만 명, 1970년-28만 명, 1971년-17만 5000명이었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 이후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종전 선언을 했다. 1975년 4월 30일 공산주의 국가로 베트남은 통일이 되었다. 미국은 프랑스가 남베트남 공화국 전쟁을 포기하고 베트남 남쪽에 독립 국가를 세운 다음 떠나버렸다. 베트남은 두 강대국과의 연속된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것이었다. 그 여파로 인접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공산화 되고 말았다.

중국-베트남 전쟁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분쟁에 중국이 개입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1965년에서 1968년까지 약 30만 명의 중국인이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베트남 통일 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1975년 4월 30일 공산주의 국가로 베트남은 통일이 됐다.

프랑스, 미국, 중국이 서로 같은 진영이 되며 잠시 협력하였지만, 공공의 적이었던 미국이 베트남을 떠나면서 다시 사이가 나빠진 것이다. 중국과 소련은 이런 상황에서 바로 옆 나라에서는 악독한 독재자가 나타나 엄청난 학살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베트남은 학살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옆 나라 캄보디아를 먼저 선제공격하였고, 중국은 공격한 베트남이 침략자라면서 공격당한 옆 나라를 도와주겠다며 베트남을 공격했다. 역시나 중국마저도 결국에는 베트남을 포기하고 떠나버렸다. 베트남은 옆 나라에 보냈던 군대를 그대로 두고 남은 군대만으로 중국의 공격을 막았기 때문에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 중국의 세 나라와 연속으로 전쟁을 하고 모두 승리한 것이다. 중국이 승리해서 베트남을 지배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로 막을 내렸다. 그 뒤 베트남은 한국과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동맹 관계 또한 강화한 베트남은 신자유주의와 신 냉전의 교차로 변화하는 국제 관계를 냉정히 바라보았다. 1975년 4월 사이공 함락과 더불어 30년 전쟁은 끝내고 이제 다시 40년 가까이 흘렀다. 분명한 것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통해 대한민국은 여러 부분에서 특히 경제적으로 크게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베트남 파병에 따른 이른 바 ‘베트남 특수’는 한국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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