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현충일 풍경
진주성-현충일 풍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11 18: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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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현충일 풍경


제64회 현충일 아침 앞 베란다 창문 밖에다 조기를 내걸었다. 아래층에도 먼저 국기가 내걸렸다. 날마다 휴일로 살고 있어 아침밥숟가락만 놓으면 집필실이자 강의실인 사무실로 나온다. 문산 사거리의 집을 나서면 소문리와 혁신도시인 충무공동을 거쳐서 공단사거리 옆의 사무실에 닿는다. 그 사이에는 길 양편으로 밀집한 아파트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열시의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까지 올리고 집을 나섰는데 고층아파트에 내걸린 태극기는 고작 네댓 개뿐이었다. 물론 운전을 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인 광경이지만 해가 갈수록 조기게양이 줄고 있어 세상민심이 왜 이러나싶어 탄식이 절로 난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나.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남은 자들은 이렇게 무정하고 매정하게 무심해 지는가. 힘을 보태고 돈을 보태라는 것도 아니다. 조기한 번 내거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귀찮은 일인가. 그것도 일 년에 딱 한 번이다. 내 아버지였고 내 남편이었고 내 형제 내 아들이었다면 이러겠나. 가신 이들은 두고라도 남겨진 유족이나 후손들의 마음이 어떤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보훈가족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허망하고 허탈하여 허무할 것이다.

참으로 민망하다. 살기 힘든 지난날에는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못했다. 지금은 정부에서는 애를 쓰는데 국민들이 무심하다. 우리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고마워해야할 우리들이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제는 배곯지 않고 웬만큼 산다. 보훈가족들이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잊지나 말아주었으면 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도 못하고 있다. 도리가 아니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충혼탑 앞이라도 지날라치면 묵념이라도 한번 올리고, 전적비 앞에서는 고맙다는 생각이라도 가져야 한다. 살아가느라 아등바등하면서도 다들 많이 배웠고 가끔씩은 해외여행도 하고 외식도 즐기면서 간간히 웃어가며 산다.

그들이 몸 바쳐서 물려준 세상이다. 숭고한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거창하게 애국까지는 안 해도 좋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훌륭한 애국이다. 안타까움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들만큼은 여유를 갖고 살면서 인심이 왜 이리도 메말라 가는 걸까. 어쩌다 이렇게 매정한 세상이 되었나 싶어 호국영령들께 미안하고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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