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9) ‘정치’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9) ‘정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16 14: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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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9) ‘정치’

북경 왕징에서 한 한국인 모임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분이 “우리나라 한류가 잘 나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하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동이족은 음주가무에 능하다…그런 게 있잖아요. 그때부터 그런 걸 보면 이미 우리 민족의 DNA에 그런 예능소질이 있나보죠.” 누군가가 그렇게 대응했다. 그랬더니 질문을 한 분이 웃으며 “그런 교과서적인 정답 말구요. 이건 넌센스 퀴즙니다”라고 말했다. “뭐지?” “뭐지?” 다들 흥미로워 하자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정부 내에 한류 당당 부처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하하, 다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웃음의 맛이 씁쓸했다.

국내의 온갖 문제들에 대한 원인진단은 한결같다. “정치가 제대로 못해서”란다. 한국정치의 무능과 부패, 이젠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각도 없다.

그게 며칠 전인데 오늘 아침 바이두 뉴스에 보니 <“胜利门”背后的韩国政坛,就是一出黑幕不断的宫斗剧>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한국관련이라 대충 읽어보았다. 이른바 ‘승리 스캔들’을 필두로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사와 재벌문제, 정경유착, 권력다툼 등을 소상하게 분석하면서 “한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韩国政治受到美国的制约和影响相当之大,在很多层面上,得看美国爸爸的脸色行事。” 같은 코멘트도 달았다.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중국의 시각이 느껴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안에서야 무슨 소리를 못하랴만 외국인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아래 달린 댓글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기사 중에 한국은 발달한 선진국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디가 발달했어? 뭐가 발달했어? 어떻게 발달했어?” 댓글이라는 게 원래 그냥 기분대로 막 쓰는 거긴 하지만 아마 나만 불편한 건 아닐 것이다.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 “미국도 똑같애” “[중국도] 오십보백보” “한국은 IT강국” 등의 댓글도 있었지만 별 위로가 되진 않았다. 게중엔 “아시아 유일의 발달국가는 일본”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응? 중국인이 이런…’ 마음이 복잡했다. 침략을 당했던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젊은 10년 세월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긍정도 부정도 하기가 곤란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별 관심도 없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정치’와 ‘경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그 현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정치와 경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조차도 정치에 의해 좌우되니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자와 플라톤 같은 대철인들이 정치를 평생의 주제로 삼은 것도 그런 인식에 기초한다.

그러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일개 학자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이른바 폴리페서가 될 생각은 없고 그럴 가능성도 제로다. 그렇다고 이른바 SNS에 정치적인 발언을 배설적으로 토해내는 것도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정치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시적인 것도 많고 거시적인 것도 많다. 나는 최소한 한국 정치인들이 공자와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좀 공부했으면 좋겠다. 포퍼나 롤스까지 한다면 더 좋고 마르크스나 요나스까지 한다면 더더 좋다. 그런 공부를 위해 날 불러준다면 청와대든 여의도든 세종이든 기꺼이 시간을 내 달려갈 용의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그런 것에 애당초 관심이 없다. 정치는 애당초, 그냥 ‘권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좋은’ 국가와 국민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어야 하는데, 그런 본질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없는 것이다. 사익이 우선한다. 그것에 기인하는 “본질의 실종” “본질에 대한 무관심” 그게 한국정치의 최대문제다. 무능과 부패는 거기서 나온다. 중국 언론의 조롱도 결국은 그 점을 꿰뚫어보고 있다. 대안은 무수히 많지만 우선은 분열주의와 패거리주의를, 그리고 사익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와 국민의 공공적 ‘선’을 위해 [여야, 좌우를 불문하고] 역량을 모아야 하고 적임자를 적재적소에 앉혀야 한다. 그것만 제대로 하면, 아니 그것을 제대로 해야, 비로소 선진국이다. 그런 것이 내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국가의 품격’이다 ‘질, 급, 격, 수준’이다. 그걸 올리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국제사회의 조롱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디가 선진국이야? 뭐가 선진국이야, 어떻게 선진국이야?” 14억분의 1이 한 말이지만 가슴이 아프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었다고 좋아하지 말자.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그 3만 불이 지금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 있으며 무엇보다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 구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그 3만 불이 정의로운 것인지 어떤지, 그 성격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엉뚱한 일들을 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비극사, 그 연원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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