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주필의 신인물기행-서예가 순원 윤영미 작가
강남훈 주필의 신인물기행-서예가 순원 윤영미 작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18 17:5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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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화선지로 글씨가 춤추는 멋진 공연 펼칠 것”
▲ 윤영미 작가는 “글씨콘서트로 한글서예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해외에도 많이 보여주고 싶다”며 “오는 7월 중국에서 하는 글씨버스킹이 해외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원(筍園) 윤영미(46) 작가. 그녀는 서예가다. 그런데 그녀는 당돌하게 말한다.


“나의 글씨는 오감(五感)이다. 시어로 완성된 이번 작품들은 자유로운 문자 조형과 한글의 표정이 눈을 유희하고(시각, 視覺), 글씨를 통해 주인공의 울음을 들려준다(청각, 聽覺). 시인의 필력을 문자 향으로 내 뿜으며(후각, 嗅覺), 맛깔스러움이 문자라는 도구를 통해 서예술로 표현된다(미각, 味覺). 그리하여 느끼게 된다(촉각, 觸覺).” 지난해 3월 12일부터 4월 28일까지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갤러리에서 열린 <순원 윤영미 한국서예 초대전>에서다.

어째서 글씨에서 오감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증이 더해 갔다. 일요일인 지난 16일 오후 경남 사천시 사천대로 17 사천문화재단 2층 창작실에서 윤 작가를 만났다. 그녀의 창작실은 남해안 쪽빛 바다에 펼쳐져 있는 창선·삼천포대교와 사천바다케이블카가 한눈에 들어왔다. 갯내음 물씬 풍기는 초여름 바닷바람이 창문을 통해 간간히 들어왔다.

끼와 재능 지닌 국내 ‘글씨콘서트’ 첫 기획자
오는 10월 사천서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 준비
진주출신, 대학서 서예문자 전공한 전통서예가
7월 중국 방문…윤동주 생가서 ‘글씨 버스킹’

-‘나의 글씨는 오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죠?
▲일반적으로 서예가 대부분이 정형화된 글씨를 많이 씁니다. 30년째 글씨를 쓰다 보니, ‘순원체’라는 저 나름의 서체(書體)가 만들어 졌습니다. 시각적으로 봤을 때의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내용으로 느끼는 수많은 감각들을 글씨로 표현하기 때문에 저는 ‘오감’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최근 10년 동안 시, 노랫말 등으로 한글작업만 해 왔습니다. 한글은 한자에서 줄 수 없는 특별한 부분들을 느낄 수 있고, 젊은 층은 한자보다 한글이 더 가깝습니다.

윤영미 작가가 그녀의 창작실에서 채근담의 글귀를 직접 써 보이며 “글씨는 내면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라고 강조했다.
윤영미 작가가 그녀의 창작실에서 채근담의 글귀를 직접 써 보이며 “글씨는 내면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라고 강조했다.

-오감 중 시각이라는 부분은 이해가 됩니다만…
▲글씨에서 시각은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은 글씨 안의 내용이나 담고 있는 뜻까지 들여다보라는 의미입니다. 시나 노랫말 등으로 글씨를 썼을 때 대중은 감응(感應)을 받게 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글씨를 글씨로만 보지 말고 그 내면까지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그러면 오감이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가장 총체적으로 나타낸 것이 (제가)지금하고 있는 ‘글씨콘서트’입니다. 글씨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볼 수 있습니다.

글씨콘서트는 윤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다. 그녀의 글씨콘서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기획물이다. 스스로가 젊은 서예가로서 ‘서예전도사’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그녀는 “이제까지 (글씨를)전시만 했다. 하지만 전시예술에 머물러 있으면 더 이상 뻗어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끌어 모으고, 이들에게 서예를 접목시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글씨를 쓰는 행위를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는 ‘공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글씨콘서트를 어떻게 시작(기획)하게 되었습니까?
▲창원교육청에 장학사로 있던 친구가 전화를 해 저보고 공연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음악가가 아니야. 서예가야. 그러니 내가 글씨로 공연을 해 줄게’라고 즉흥적으로 답했죠. 그때부터 글씨콘서트 기획은 시작되었습니다. 가야금 소리와 함께 제가 무대에서 직접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공연(퍼포먼스)을 했습니다. 종이가방 180개를 준비해 선생님들의 이름까지 새겨 넣어 무대에 전시해 두었다가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명품백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참가 선생님들이 모두 핸드폰으로 일제히 촬영을 하는 등 ‘대박’이 났습니다.

-그 뒤 글씨콘서트는 계속 이어졌나요?
▲네. 창원에서 두 번, 안동, 대구 등 지금까지 6번 정도 콘서트를 했습니다. 대구 수성 구립도서관에서 콘서트를 했을 때 (콘서트를)지켜본 도서관 관장님이 ‘장관(壯觀)이었다’고 극찬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오는 10월 9일 사천에서도 글씨콘서트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글날이죠? 그래서 이날 2시간30분 동안 진행되는 콘서트 전체를 ‘한글’이라는 대 주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무용과 음악, 글씨가 한데 어우러진 공연이 될 것입니다. 사천에서 진행될 콘서트가 7번 째 입니다만, (제가 사는 지역이다 보니)많이 긴장되고 매우 조심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사천시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할 예정인데, 600명의 관객과 함께 하는 공연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획하고 있는 공연 내용을 조금만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아, 이건 비밀인데…)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아동작가이자 시인인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1930.9~1999.5)의 유명한 그림동화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 The Giving Tree>를 제가 직접 쓴 글씨로 책을 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관객들은 서예가가 쓴 동화책을 읽게 됩니다. 멋진 감동의 울림이 있겠지요.

-공연을 하시는 데는 많은 비용도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외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않고 공연티켓 판매 등 공연수익 만으로 진행합니다. 저는 글씨(서예)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무기인 붓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펼쳐질 수 있는 화선지 위에 쓸 수 있는 문자라는 무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글씨가 춤을 추는 공연 현장,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을까요?

-이런 공연기획을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원래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음악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고 노는 것에 타고난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끼’와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할 따름이지요.

지난 5월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윤영미 작가의 작품.
지난 5월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윤영미 작가의 작품.

-시나 노랫말 등은 어떻게 선택 하는지요?
▲거의 즉흥적으로 합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서울 교보문고에 걸려 있는 대형 현판시(詩)를 보고 감동을 받아 저 그림과 글귀를 가지고 개인전을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 3년 전에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윤 작가는 28살 때 사천에서 서실을 차렸다. 그때 스스로 다짐한 것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였다. 그래서 그녀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너무 튄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다. ‘누군가의 앞에서 글씨를 쓰거나 붓을 잡아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비로소 바깥 세상에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첫 개인전을 2016년 들어 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재치가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글씨버스킹(busking)’ 얘기를 꺼냈다.

- 버스킹이란 길거리에서 하는 공연이잖아요. 글씨콘서트하고 차이가 있겠네요.
▲오는 7월 20일쯤 역사탐방가 등 30여명이 중국으로 역사기행을 갈 예정입니다. 중국 룡정의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방문해 툇마루에서 그의 시 <새로운 길>이라는 작품을 쓸 것입니다. 글씨콘서트는 무대 등 특정한 장소가 정해져 있지만, 글씨버스킹은 붓과 화선지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가능합니다.

-윤 작가의 또 다른 문화콘텐츠가 되겠네요?
▲백두산, 두만강 등등. 국내 뿐 만이 아니라 앞으로 해외에서도 이 같은 공연을 해 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한글의 우수성도 알릴 겸,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겠죠?

-지난달에는 사천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번에는 채근담(菜根譚, 중국 명 말의 환초도인 홍자성의 어록)만 모아서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글만 주로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한자에도 손을 댔습니다. 전각(篆刻)이 저의 전공이라서 돌에 글자를 새겨 넣었지요. 개인전이 마치 ‘인문학의 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5월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윤영미 작가의 작품.
지난 5월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윤영미 작가의 작품.

-작품들은 다 팔렸나요?
▲저는 (개인전을 열 때 마다)‘완판작가’입니다.(웃음) 서예에서는 보기 드문 디자인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합니다. 좋은 글씨의 내면까지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유혹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윤 작가는197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여고를 거쳐 대구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원 전통예술학과에서 서예문자를 전공한 전통 서예인 출신이다. 1999년 결혼을 하면서 사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그동안 개인전 4회와 개인초대전(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도 열었다. <순원의 글씨콘서트>로 전국을 투어 중이며, 현재 사천문화재단 이사, 국립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서예 출강을 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특히 사천시에서 해마다 승진자에게 내리는 교지(예서체)의 전담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제가)갈수록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글씨콘서트가 각 문화영역에 파고 들어가 한글서예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해외에도 많이 보여주고 싶다”며 “오는 7월 글씨버스킹이 해외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전시했던 채근담의 신용(神用)을 인용했다. 해독유자서(解讀有字書)/불해독무자서(不解讀無字書)/지탄유현금(知彈有絃琴)/이적용(以跡用)/불이신용(不以神用)/하이득금서지취(何以得琴書之趣)-‘사람들은 글자있는 책은 읽지만 글자 없는 책은 읽지 못하고, 줄 있는 거문고는 타지만 줄 없는 거문고는 타지 못한다. 형체 있는 것은 쓸 줄 알지만 정신을 쓸 줄 모르니 어찌 거문고와 책의 참맛을 알겠는가!’ 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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