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신분계급없이 의병지원
진주성-신분계급없이 의병지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20 12: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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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신분계급없이 의병지원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나라사랑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과 공로에 보답코자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한 것은 6월에 현충일과 6·25전쟁이 일어난 날이 있기 때문이다. 6월1일은 의병의 날로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나가고자 정한 날 의병(義兵)은 역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백성이 스스로 조직한 군대나 병사를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시대(1231-1259) 7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싸운 전쟁으로 제2차(1232) 처인성 전투와 제5차(1253) 충주성 전투에서 의병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1232년에 고려정부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겼다. 몽골 군대가 개경을 거쳐 경기도 광주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용인 수원에 살던 백성과 승려 김윤후의 지휘아래 전투를 벌여 몽골군 장수 살리타가 화살에 맞아죽자 몽골군은 고려에서 철수하였다.

1253년 고려를 5차로 침입한 몽골군이 충주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충주성을 지키고 있던 지휘관은 김윤후 몽골군을 70여 일 동안 충주성을 위협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충주성을 지키던 군사와 백성은 식량이 떨어져 위태로움에 이르자 김윤후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신분 불문하고 벼슬을 내릴 것을 약속하며 노비들의 문서를 불사르고 백성에게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사기가 오른 백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적을 물리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군이 며칠사이 조선의 국토와 백성을 짓밟는데 관군은 힘없이 무너지자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계급과 신분 구별 없이 자발적으로 앞장서서 지휘한 사람은 의병장 전라도 지역에는 고경명과 김덕령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한양과 진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운 김천일 등 의병장으로 큰 활약을 했다.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모은 곽재우, 합천에 정인홍, 황해도에서 이조참의를 했던 이정암, 함경도에서는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충청도에서는 조헌과 의병700명이 금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기도 하였다. 1592년 4월 22일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가 5월 18일 의령기강에서 5월 24일 정암전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후에는 현풍 창녕 등 전투를 벌여 승리하였고. 10월에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승리 곽재우는 붉은 옷(紅衣)을 입고 의병을 지휘 홍의장군의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의병의 날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호국보훈의 달 6월 1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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