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게 무슨 곡조인가,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칼럼-이게 무슨 곡조인가,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21 16:1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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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

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이게 무슨 곡조인가,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말을 타고 가던 나그네가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구종(驅從) 아이도 나란히 시선을 옮긴다. 고요한 봄날의 정적 사이로 꾀꼬리소리가 지척 간 버들잎 사이에서 사랑스럽게 울려 퍼진다. 맑고 청아한 소리, 곱고 앙증맞은 자태다. 꾀꼬리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 멍해진 선비 마음은 마치 그 뒤편 망망한 여백처럼 아득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정겨워 잠시 말을 멈춰 서서 부러운 듯 바라본다. 봄날의 시정(詩情)이 감정이입으로 젖어 드는 김홍도(金弘道·1745년~1806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이다. 아름다운 여인 꽃 아래에서 천 가지 피리 소리를 대고, 시인은 술상 앞에서 한 쌍의 귤을 보는구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년~1806년),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조선18세기말~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117.5x52cm, 간송미술관 소장.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년~1806년),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조선18세기말~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117.5x52cm, 간송미술관 소장.

 

언덕 위 버드나무를 어지러이 누비는 저 꾀꼬리, 안개와 비를 엮어 봄의 강가에 비단을 짜누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岸, 惹烟和雨織春江). 그림 속 선비도 봄을 찾아 나선 것일까? 꾀꼬리의 절묘한 가락이 꽃 아래 여인의 봄노래가 되고, 황홀한 모습은 아찔해서 술 향기 맡은 젊은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버들가지 사이로 오르내리는 움직임을 따라가 보니, 촉촉이 강가를 적신 보슬비의 주인공이 결국 꾀꼬리임을 알 수 있었다.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선비가 고개를 돌려 꾀꼬리가 앉아 있는 버드나무를 쳐다보자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눈길도 자연스럽게 선비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림의 주인공은 분명히 말 탄 선비지만 선비의 시선을 통해 교감을 나눈 버드나무와 꾀꼬리의 존재가 부각이 되어 진다. 선비의 시선은 꾀꼬리와 관람자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선묘로 처리한 인물과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 말의 대비도 인상적이다.


선비와 구종이 입은 옷은 선으로 그려 몸을 감싸고 있고 반면, 말은 몰골법으로 표현하여 부드러운 털의 질감이 느껴진다. 이런 대비는 버드나무의 표현에서도 반복된다. 두꺼운 껍질로 뒤덮인 줄기의 아랫부분을 구륵법으로 그려 연륜을 표현했다면, 연녹색 잎사귀와 가지는 몰골법으로 그려 연약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안정된 구도 속에서 말과 버드나무와 꾀꼬리에 칠한 연한 채색이 길가에 자라난 풀과 맞물려 봄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작품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이유가 화면을 운용하는 이러한 탁월한 감각 때문일 것이다.

마상청앵도의 소재가 되는 버드나무는 한시(漢詩)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특히 이별의 장소에는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왕유, 정지승, 정몽주, 서거정, 이정구의 시에도 버드나무는 이별의 슬픔으로 그려진다. 갈래 길에서 버드나무를 등장 시켜 거꾸로 꽂아도 살아나는 버드나무처럼 어딜 가더라도 건강 하라는 이별의 당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상청앵도를 보는 순간 유리왕(瑠璃王)이 지은 황조가(黃鳥歌)가 그려졌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가 암수 서로 정다운 것을 보고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외로워졌는지도 모른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는 떠나간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너무 청아하고 맑아서 더 구슬프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의 마음속에 꾀꼬리 한 마리 정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길을 걷다가 문득 내 발을 멈추게 하는 것이 어디 꾀꼬리뿐이겠는가. 이게 무슨 일인가! 고요하게 스며드는 달빛을 보고도, 풀숲에 엉켜있는 나팔꽃을 보고도, 어쩌면 저녁 무렵에 층층의 아파트에 켜져 있는 그 불빛을 보고도 나는 움찔 하고 발길을 멈출 때가 있다. 마상청앵도에서 내 인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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