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양은냄비와 뚝배기
아침을열며-양은냄비와 뚝배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26 13:0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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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경/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광고디자인과 교수
권미경/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광고디자인과 교수-양은냄비와 뚝배기

오래 전 일이다. 친한 친구사이인 두 학생을 동시에 가르친 적이 있다. 한 친구는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배운 것은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들고, 표현력도 뛰어났다. 다른 한 친구는 그와 달리 타고난 소질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능력이 조금 모자랐던 두 번째 학생은 그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주변에 잘하는 친구를 보고 시기하거나 소질 없는 자신을 탓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연습량을 늘려가며 꾸준히 노력했다. 그래도 한 동안 실력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더 조바심이 나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온 그 학생이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깜짝 놀랐다. 거기서 거기이던 스케치가 어느 장부터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말 네가 그렸니?”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후 두 친구는 거의 비슷한 실력을 갖게 되었다. 취업 결과도 둘 다 만족스러웠다.
물은 온도가 100℃가 되면 끓게 된다. 그러나 끓는점에 도달하기 전의 물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포가 생기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물은 요동을 치며 힘차게 끓기 시작한다. 그리고 용기에 담겨서 갇혀 있던 물은 이내 수증기가 되어 자유롭게 공중으로 날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도 물이 끓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열심히 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소질이 없다’거나 ‘적성이 안 맞다’고 자책하며 자포자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제 나름 열정을 다해 애를 쓰는데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0℃를 넘겨야 물의 근본적인 변화를 알 수 있게 되듯이 이전과 다른 자신을 만나려면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의 종류, 가해지는 열의 세기나 양에 따라서 물 끓이는 시간이 다르듯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진가를 보여주는 데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양은냄비는 물이나 음식을 비교적 금방 데울 수 있다. 반면 그만큼 쉽게 음식이 식어버릴 수 있다. 이에 비해 뚝배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긴 시간동안 음식을 따뜻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이 가진 타고난 능력은 양은냄비나 뚝배기 같을 수 있다. 따라서 삶을 살아가면서 의미 있는 어떤 성과나 변화를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열정과 노력, 그리고 시간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리라.
타고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시간으로도 뜻한 것을 이뤄낼 수 있겠지만, 그만큼 그 성과를 오래시간 유지하기 곤란할 수도 있음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반대로, 자신에게 재능이 크게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라면 다소 고통스러울 수 있는 성취의 과정이 아니라, 크고 단단하게 성장해 있을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수증기처럼 언제가 뜻을 이루고 행복의 나래로 자유롭게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자신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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