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숙/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채영숙/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나이답게 나이 들고 싶다옷에 달린 주머니와 가방에 달린 여러 개의 수납공간 여기저기를 찾는 내 행동을 보면서 오늘 아침에도 한숨부터 짓는다. 아! 오늘도. 언제부터인가 누군가가 뭘 물어보면 갑자기 중요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 친구나 학생의 얼굴을 보면 기억은 나는데 이름이 가물가물 입 안에서만 맴돈다.
정년퇴임을 하신 분들의 노련함을 보면서 저 때가 되면 나는 저럴 수 있을까?
학교에 재직을 하다 보니 매년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고 4년 내지 6년의 주기로 학생들이 바뀐다. 새내기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 안팎이다. 고등학교까지의 억눌린 생활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싱그러운 나이들이니 모든 것이 활기차고 때로는 엉뚱한 발상들로 나를 놀래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 내가 나이 들어감을 가끔씩 잊고 산 것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생의 생각으로, 대학 교수는 대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살아야 힘들지 않게 산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또한 생활하는 영역이 그리 넓지 않으니 만나는 사람의 폭도 좁아 크게 내 삶에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마음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면서 신체적 변화의 느려짐과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나를 인지하는 능력도 감소하고 있구나 자책을 한다.
아직 반평생에서 조금 지난 정도밖에 살지 않았는데 남은 절반은 평온하게 평화롭게 살 준비를 하란다. 고민이 생겨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가급적 입은 닫으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나를 온전히 던지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남은 절반도 흥미진진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면 어떡하지? 내가 30대, 40대에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서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50대에 접어들면서 멋지게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답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아도 멋지고 내가 나를 보아도 멋진 모습. 겉모습도 내면도 모두 멋진 노년의 모습.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가 은은하게 묻어나면서 뭔가 성숙함과 인자함을 가질 모습이면 좋겠다.
20대의 학창 시절은 뭔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 보겠다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공부에만 푹 빠져 살았고, 30대의 생활은 새로운 연구 분야가 나오면 그것을 습득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개발에 매달리기도 했다. 40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 철들지 않고 조그마한 것에도 흔들리고 마음 상해하는 나를 보면서 “불혹”의 의미를 옆에서 되새겨 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0이 되어서도 나 바라보기가 부족해 여전히 조그마한 일에도 감정이 북받치면 조절을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를 보면서 천천히 긴 호흡으로 나를 달랜다. 오늘도 참아야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신체적 변화에 적응을 하면서 조심히 달래가면서 살아가야 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둔감하게 반응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내가 아는 것과 남이 아는 것에 차이를 인정하면 말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 중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무덤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 본인이 경험하는 것들을 어떻게 멋진 이야기로 엮어낼 것인가? 자기 삶에 대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일일 것이다. 경험은 생각에 폭과 너비를 더하고 다채로운 색깔과 맛깔스러움을 가미하면서 말이다. 제대로 된 성숙미를 더한 이야기는 재미나게 들릴 것이고, 무미건조한 이야기조차도 그 나름의 삶의 묘미라고 인정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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