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디카시 새로운 문예사조의 시발(始發)
시론-디카시 새로운 문예사조의 시발(始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6.30 15:1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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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디카시 새로운 문예사조의 시발(始發)

인류 문화사에 있어 문예사조의 흐름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일정한 패턴을 따라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조의 전개는 온전히 서구의 개념이다. 한국의 문학사 또는 미술사에 반영된 문예사조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여러 유형의 예술적 경향이 함께 유입되었다. 마치 한 밥상에 차려진 여러 종류의 반찬처럼, 주로 일본을 통해 서로 다른 예술 형식이 한꺼번에 수용된 것이다. 1930년대의 대표적 작가인 김유정, 이효석, 이상이 각각 낭만적 서정, 객관적 현실, 심층적 의식을 동시대의 문학으로 보여준 것이 그 하나의 예증이다.

문학사에 있어 가장 오랜 장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시(詩)다. 언어의 운율성과 비유 및 상징의 기능이 결합된 시는, 문명의 기록이 가능한 초기부터 형상력을 얻었다. 그에 비해 대표적 산문 장르인 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 이후 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표현방식 곧 글을 통한 표현의 대중적 기능 확산과 더불어 확립되었다. 지금도 예술적 수준을 논외로 하고 보면, 창작이 용이하고 분량이 길지 않은 시가 훨씬 더 광범위한 친화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문학에 있어서 짧은 시의 대명사는 시조(時調), 그 중에서도 단시조다. 이는 3연으로 구성되고 총 45자 안팎의 길이다. 이제껏 축적된 시조의 명편들은 여전히 시인묵객들과 지근거리에 있다. 고려조 이조년의 ‘다정가’나 조선조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은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짧은 시편으로 하나의 문학사적 조류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세계의 문화 자산으로 인정받은 것이 일본의 하이쿠(俳句)다. 5, 7, 5의 3구 17자로 구성되는 이 돌올한 문학형식은 17세기 도쿠카와 시대에 단카(短歌)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20세기 초 프랑스 문학에 도입되는 것을 필두로 서구에까지 강한 수용력을 보였다. 하이쿠의 명인 마쓰오 바쇼의 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와 같은 대목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한다. 짧고 간략한 것이 중언부언의 긴 사설보다 한결 집중력과 전파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 하이쿠를 넘어설 하나의 문학사적 변혁이 시작되었다.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문예장르가 탄생한 사건이다. 지난 6월 22일 경남 고성에서 ‘제12회 국제디카시페스티벌’이란 행사가 열렸다. 15년 전 이 지역에서 시작된 ‘디카시’가 삼남 일대와 한국을 넘어 세계무대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세계적 확산을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예장르에 있어 전자매체 영상문화 시대의 새로운 예술형식을 담보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디카시는 디지털 카메라와 시의 합성어이며, 우리 시대에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순간포착의 영상을 확보하고 거기에 두세 줄 촌철살인의 시적 언어를 덧붙이는 것이다. 동시에 이를 그 동호인 그룹 상호간에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현장성과 속도감을 갖는다.

이 새 시문학은 이제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한글로 활발하게 창작됨으로써 또 하나의 한류를 이루고 있다. 디카시라는 용어가 국립국어원에서 공식적인 문학용어로 인정되었고, 여러 곳의 교과서에 실리고 있다. 경향 각지의 문학제에서 공모전이 시행되는가 하면 계간 ‘디카시’를 비롯한 디카시집의 발간도 줄을 잇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영상과 시적 언어의 조합을 즐거워 할 수 있고 이를 쉽게 공유할 수 있으니, 문학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문학이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올해 안으로 한국디카시인협회도 결성된다는 소식이다. 가장 큰 과제는 하이쿠의 문학적 수준을 능가하는 예술적 성취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큰 기대와 더불어 그 추이를 예의주시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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